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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기사]

    중화사관과 식민사관에 물든 한국사 교과서

    중화사관과 식민사관에 물든 한국사 교과서

    최재목 기자

    대한大韓의 미래, 청소년들의 역사 교과서가 위험하다. 『위험한 역사시간』을 저술한 이주한 역사비평가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 교과서와 대부분의 한국 통사들은 ‘있었던 사실을 반영한 역사’가 아니라 ‘설정된 개념과 프레임에 맞춘 역사’를 쓴다. 일제 강점기에 주입된 개념에 맞춰 역사를 서술하기 때문이다.” (『위험한 역사시간』, 34~35쪽)

    미래의 희망인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우리 역사를 배우며 무엇을 느낄까?

    경북 구미선주고 1학년 김민지

    단군신화로 시작하는 역사를 배우고 있었는데 ‘그럼 시작이 없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시작이 신화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교과서에 우리나라 유물이 나오는데 다른 나라 박물관에 있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왜 되찾아오지 않는지 궁금했습니다.

    대전 중리중 2학년 박찬희

    우선 우리나라의 역사 교과서에 대해 매우 실망했습니다. 위만이 1,000명을 이끌고 고조선으로 들어와 왕이 되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더 놀라운 것은 위만이 중국의 역사책에도 분명히 연나라 사람이라고 나와 있음에도 ‘상투를 틀고 오랑캐의 옷을 입었다’는 이유 하나로 ‘위만을 동이족 계통의 인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또 단군이 신화라 한 점 역시 충격적이었습니다. 총체적 난국이라 느낄 만큼 교과서에서 나온 내용은 참담했습니다. 정말 역사광복의 필요성을 많이 느낍니다.

    울산 울산에너지고 3학년 우도형

    교과서는 역사적 사건들만 모아놓은 책 같았습니다. ‘과거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는 말이 있지만 교과서를 보면 우리나라는 가망이 없는 것처럼 보였어요. 또 역사를 단순히 외우고 시험 치는 목적으로 배우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아는 건 당연하지만 배우고도 남는 게 없는 과목으로 전락한 것 같아 가슴 아픕니다. 충남 서산여고 2학년 이선옥

    제가 『환단고기』를 읽지 않았을 때는 학교 역사책이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있는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적은 줄 알았어요. 그러나 『환단고기』를 읽고 고등학교 교과서를 바라보니 확실히 허술하고 이상한 점들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전에는 왜 몰랐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수업을 듣고 교과서를 읽어보니 말이 되지 않는 부분이 가득해서 솔직히 말해 화가 나기도 하고 어이도 없었습니다. 교과서의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니 아주 많은 부분이 왜곡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 단군시대의 역사가 신화로 되어 있고 환국, 배달의 역사는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역사가 너무 짧게 기록되어 있는 것이 참 이상하고, 단군조선과 삼국시대의 역사가 너무 허술하고, 수천 년 동안 일어난 역사가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차근차근 하나씩 살펴보고 따져 보니 역사왜곡의 심각성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습니다. 일본과 중국이 잔인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환단고기』를 읽지 않았다면 평생 왜곡된 역사를 진실이라 믿으며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니 소름이 돋을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저만 알아야 할 게 아니라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역사광복이 꼭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충남 논산여자상업고 3학년 이승진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라 하는데 정작 교과서를 보면 단군은 신화라고 가르칩니다. 우리의 뿌리, 조상님들을 부정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환단고기』에서 우리나라는 9천 년이나 되는 위대한 역사를 가진 민족임을 명확히 밝혀 주었는데도 역사학자들은 그것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웃 나라는 없는 역사도 만들어 내어 자기들이 역사의 뿌리라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실제 모든 나라의 뿌리이며 9천 년이나 되는 위대한 역사를 가졌음에도 여전히 식민사학에 찌들어서 9천 년 역사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에 분노합니다. 우리나라의 본래 역사를 되찾아야 합니다.

    전북 남원고 2학년 김동주

    교과서를 그대로 믿고 배웠습니다. 미래에 나라를 이끌어 갈 사람들이 배우는 거라 당연히 맞는 것만 들어있겠지 하면서 읽었습니다. 그러나 교과서라고 해서 다 옳은 건 아닐뿐더러 고대사 부분 내용이 말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뭔가 많이 빠진 듯한 내용에 답답했습니다. 왜 초대 단군과 마지막 단군만 있나요? 그리고 도적 위만이 왜 단군인가요?

    역사 교육은 정말 중요합니다. 정말 올바르게 배워야 합니다. 역사라는 것은 민족의 자존심이자 경쟁력이 될 수 있으니까요. 지금 『환단고기』를 읽은 시점에 그 모든 의문점과 해답이 풀렸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일본과 중국이 친 역사의 올가미와 덫에 걸려 풀려나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앞으로는 역사광복을 하여 식민사학과 사대주의 사학의 잔재를 제거하고 국사 교과서를 개편하여 학생들에게 바른 역사 교육으로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줬으면 합니다.



    청소년들은 한마디로 문화 자긍심 대신 혼돈과 좌절을 느낀다. 특히 상고사 부분을 공부하노라면, 끊어진 역사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한다.

    여러분이 중·고등 교과서를 읽어봐도 한민족의 올바른 국통國統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중화주의와 일제 식민사관의 마수를 벗어나지 못한 역사 교과서는 단군조선→위만조선→한사군으로 역사가 이어졌다는 잘못된 국통에 따라 서술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역사 교과서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진단해 보자. 먼저 ‘단군조선의 실재와 그 기술 문제’를 집중적으로 살피려 한다. 이어서 위만이 과연 단군조선을 계승했는지 알아보고, 한반도 남부에 있었다는 진국辰國에 대한 잘못된 기술을 살펴본다.

    첫째, 단군조선의 실재에 관한 왜곡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조선이 건국되었다. ‘조선’이라는 국호는 우리말 ‘아사달’을 중국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중국의 요 임금이 즉위한 지 50년 만에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이 건국되고, 단군왕검이 즉위하여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었다. 단군왕검은 천신 사상을 가진 환웅 부족과 곰 토템을 지닌 웅녀 부족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단군왕검에서 단군은 ‘제사장’을, 왕검은 ‘정치적 지배자’를 의미한다. (『고등학교 한국사』, 법문사, 16쪽)

    강화도에 있는 마니산의 정상에 올라가면, 단군이 하늘에 제사 지내기 위해 쌓은 것으로 전해지는 참성단이 있다. 단군이 세운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크게 발전하였다. ... 기원전 4세기경 한반도에 철기가 보급되었다. 철기와 함께 출토된 중국 동전을 통해 철기 시대에 이미 중국과 활발하게 교류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등학교 한국사』, 비상교육, 18쪽)

    청동기 문화와 농경 사회를 배경으로 만주와 한반도 서북부 지역에서 고조선이 건국되었다. 단군 이야기에 따르면, 천신 환인의 아들 환웅이 비와 구름, 바람을 주관하는 관리와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신시를 세우고, 곰이 변한 여자와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으며,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한다. (『고등학교 한국사』, 비상교육, 17쪽)

    청동기 문화의 발전과 함께 족장 사회에서 가장 먼저 국가로 발전한 것은 고조선이었다.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에 따르면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건국하였다고 한다(기원전 2333). 고조선은 요령 지방을 중심으로 성장하여 점차 주변 족장 사회를 통합하면서 한반도까지 발전하였다. 고조선의 건국 사실은 단군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고조선은 환웅 부족과 곰을 숭배하는 부족이 연합하여 형성되었으며, 단군은 제정일치의 지배자였다. 고조선은 기원전 4세기경 요서 지방을 경계로 중국의 연나라와 대립할 만큼 성장하였다. 또한 기원전 3세기경에는 부왕, 준왕과 같은 강력한 왕이 등장하여 왕위를 세습하였다. (『고등학교 한국사』, 지학사, 20쪽)

    교과서를 보면 전체적으로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건국하였다.”로 기술하고 있다. 이것은 2007년 이후 개정된 것이다. 그 이전에는 “건국하였다고 한다.”로 적었다. 2010년 검정 이후에는 다시 간접 인용을 하는 교과서도 있다. 단군조선을 믿을 수 없고, 객관적으로 기록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2007년 이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건국하였다고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실증사학을 내세운 식민사학자들의 논리일 뿐이다.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건국하였다고 한다.” (『한국사』, 지학사, 2012)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한다.” (『한국사』, 천재교육, 2012)

    그리고 환웅천황이 곰을 토템으로 삼는 웅족을 만났는데 그 웅족 여인을 아직도 ‘곰이 변한 여자’로 기술하고 있다.

    ‘단군 이야기에 따르면, 환웅이 ... 곰이 변한 여자와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으며,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한다.’ (『고등학교 한국사』, 비상교육, 17쪽)

    그런데 『환단고기』에 실려 있는 『삼성기』를 보면 이 ‘단군 이야기’의 실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곰이 어떻게 사람으로 바뀔 수 있는가. ‘곰’과 ‘호랑이’는 동물이 아니라 ‘웅호이족熊虎二族’이다. 곰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섬기던 웅족과 호족인 것이다. 곰족이 광명의 환웅족을 만나 진정한 광명의 인간으로 거듭나기 원했고(‘원화위인願化爲人’), 결국 천지광명을 체득한 인간으로 거듭났다는 것이 단군 이야기의 결론인 것이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 스님은 단군왕검은 ‘있다’고 분명히 전한다.

    魏書에 云 乃往二千載에 有壇君王儉이 立都阿斯達하시고 開國 號朝鮮하시니 與高同時니라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난 2,000년 전에 단군왕검께서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시고 나라를 세워 이름을 조선이라 하시니 요임금과 같은 시대라 하였다.

    이 글은 『위서』라는 책을 보고, 일연 스님이 저술한 것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위서』 중에는 위와 같은 기사가 실려 있지 않다고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고서는 전란이나 화재를 겪으면서 사라질 수도 있지 않은가. 지금 없다고 해서 일연 스님이 당대에 본 『위서魏書』를 없었다거나 믿을 수 없는 책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수천 년의 시간을 CCTV로 확인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아래 문장을 읽어보자. 현재의 국사 교과서를 편집한 사람의 의중이 잘 드러나 있다.

    청동기 문화의 발전과 함께 족장 사회에서 가장 먼저 국가로 발전한 것은 고조선이었다.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에 따르면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건국하였다고 한다(기원전 2333). (『고등학교 한국사』, 지학사, 20쪽)

    『삼국유사』에 나오는 기원전 24세기라는 고조선의 건국 시기는 우리나라 역사의 유구성을 강조하려는 고려 사람들의 역사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실제로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가 상당히 발달한 기원전 10세기 이후에 성립되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한국사』, 금성출판사, 29쪽)

    『삼국유사』에 나오는, 기원전 24세기에 고조선이 건국되었다는 설은 고려 사람들의 역사인식일 뿐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와 더불어 건국되어야 한다고 보아 기원전 10세기 이후에 고조선이 성립되었을 것이라는 기술이다. 한마디로 단군왕검의 건국을 믿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런 교과서 서술 방식은 청소년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그러면 단군의 역사를 부정하는 학자들은 무엇을 주장하려는 것인가? 단군을 신화적 존재로 보거나, 단군조선 건국 자체를 인정하지 않거나, 그 건국 연대를 청동기시대인 10세기 무렵으로 끌어내리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문제점을 밝혀 보자. 대체로 단군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학자들의 주장은 다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① 고조선이 문헌상에 처음 나타난 것은 서기전 7세기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관자管子』에 등장) ② 단군은 역사적인 실존 인물이 아니라 신화 즉 가공의 인물이다. ③ 단군신화는 조선이라는 국가가 세워지고 난 이후 만들어진 건국신화가 구전되다가 고려시대에 정리된 것이다. ④ 세계적으로 청동기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국가가 성립되는데 우리나라의 청동기 문화는 서기전 1,000년경부터 시작된다. 만주에서 건국했다고 해도 빨라야 서기전 15세기경이다.

    이 ①, ②번 항목을 함께 반론해 보기로 한다. 우리가 수천 년 전의 일을 소상하게 알기는 어렵다. 역사 문헌과 유적 연구를 통해서 하나하나 밝혀갈 뿐이다.

    9년 홍수라는 거대한 자연재해에 관한 기록은 단군조선의 역사를 증명한다. 은나라라는 중국 고대 왕국은 은허 유적을 통해서 실제로 존재하였음이 밝혀졌다. 만약 그때의 기록이 중국과 한국에 동시에 남아있다면 그 나라의 존재 사실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가 될 것이다.

    중국의 『오월춘추』에는 우임금이 홍수를 다스린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우임금은 홍수를 제어하지 못하자 백마를 잡아 그 피로 산신에게 제사지냈다. 그러나 대처법을 내려 받지 못하고 산꼭대기에 올라가 하늘을 향해 소리치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에 붉은색으로 수놓은 비단 옷을 입은 현이창수사자玄夷蒼水使者를 만나 금간지서金簡之書를 얻었다. 그리하여 득통수지리得通水之理, 물의 이치를 통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이 『오월춘추』에 분명히 적혀 있는 것이다.

    禹乃東巡하야 登衡嶽하고 血白馬以祭로대 不幸所求어늘 禹乃登山하야 仰天而嘯러니 因夢見赤繡衣男子하야 自稱玄夷蒼水使者라 聞帝使文命於斯하고 故來候之로다. 非厥歲月이어늘 將告以期하리니 無爲戲吟하라. 故倚歌覆釜之山이로다 하고 東顧謂禹曰 欲得我山神書者면 齋於黃帝岩嶽之下하고 三月庚子에 登山發石하면 金簡之書存矣리라 하거늘 禹退又齋하고 三月庚子에 登宛委山하야 發金簡之書하고 案金簡玉字하야 得通水之理러라. (『오월춘추』)

    그러면 우임금이 꿈에 보았다는 붉은색 비단 옷을 입은 동방 사람 즉 현이玄夷의 창수사자는 누구인가?

    『단군세기』와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을 보면 이 창수사자가 누구인지 명확해진다. 단군왕검께서 중국이 홍수를 당해 괴로워함을 들으시고, 태자 부루(후에 2세 부루扶婁 단군)를 보내어, 금간옥첩金簡玉牒에 적은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을 전수한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단군세기』를 보면, 홍수가 일어나자 단군왕검은 즉위 50년(서기전 2284)에 풍백 팽우彭虞로 하여금 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이듬해에 강화도 마리산에 제천단인 참성단塹城壇을 쌓고 직접 올라서 천제를 지내셨다. 부루 태자는 산동반도의 낭야성을 지나서 도산塗山(회계산)회의를 주관하고 순임금이 보낸 사공司空 우禹(후에 치수공덕으로 임금이 됨)에게 치수법을 전하였다.

    또 『태백일사』에는, 우虞나라 순임금이 보낸 우禹가 회계산에서 조선의 가르침을 받을 때 자허 선인紫虛仙人을 통해 창수사자蒼水使者인 부루 태자를 뵙고 『황제중경黃帝中經』을 전수 받았다. 우는 이 『황제중경』을 치수에 활용하여 공을 세운 것이다.

    『오월춘추』와 『단군세기』, 『태백일사』의 기록을 비교해 보면, 창수사자가 곧 부루 태자임을 알 수 있다.

    甲戌에 太子扶婁가 以命으로 徃使塗山할새 路次琅邪하야 留居半月하야 聽聞民情하니 虞舜이 亦率四岳하야 報治水諸事하니라 番韓이 以太子命으로 令境內하야 大興扃堂하고 并祭三神于泰山하니 自是로 三神古俗이 大行于淮泗之間也라. (『태백일사』)

    그런데 『오월춘추』에는 부루 태자가 오행치수법을 직접 전한 사실과 전후 사정을 감추고, 꿈에 창수사자가 금간金簡에 쓴 글을 받아 물의 이치를 통했다고 했다. 『오월춘추』의 기록은 하나의 역사왜곡 사례이지만 사공 우가 부루 태자에게서 동방 조선의 치수법을 받아서 홍수를 다스린 사실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중국과 한국 기록이 만나는 곳, 동시에 같은 사건을 기록한 곳을 집중조명해 봐야 하다. 그때 역사진실을 만난다.

    다시 강조하지만 『오월춘추』와 『환단고기』를 동시에 읽을 때 단군왕검의 실재와 동방대국의 통치자임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삼국유사』와 『환단고기』를 함께 공부하면 단군왕검은 배달국을 계승해 아사달에서 조선을 개국하셨고, 단군조선은 마흔일곱 분이 2,096년을 이어왔다는 단군역사의 머리와 몸통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호에서 집중적으로 살펴보겠지만 위만衛滿이라는 자가 나라를 빼앗은 의롭지 못한 도적이라는 것과, 현 교과서에서 단군조선의 마지막 왕으로 칭하는 기준箕準이 서쪽 변방을 일시적으로 지배한 번조선의 왕(부단군)일 뿐이라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이제 ‘곰이 사람되었다’는 유치한 생각에서 벗어나 단군의 통치정신을 논하길 기대한다. 그리고 유물만 논하지 말고 단군조의 통치정신을 논하는 역사 시간, 한중의 실질적인 문화교류를 논하는 재밌고 유익한 교육시간이 되길 바란다.

    ③의 견해도 사실과 전혀 다른 것이다. 고려 이전 고구려시대에 이미 단군을 모신 것에서도, 단군신화가 고려시대에 와서야 정리되었다는 설이 온당하지 않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우선 고구려 각저총角抵塚(만주 길림성 집안현 여산에서 1935년 발견) 벽화를 보면 씨름하는 두 남자 옆에 곰과 범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을 통해서 고구려인들이 단군 사적의 주요 내용을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구당서舊唐書』 「동이전東夷傳」 ‘고구려高句麗 조’에는 “영성신靈星神·일신日神·가한신可汗神·기자신箕子神을 섬긴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가한신은 바로 단군을 뜻한다.

    아울러 중국 산동성의 가상현에 있는 무씨사당석武氏祠堂石(전한前漢 BCE 202~25)에도 단군 사화와 흡사한 곰과 호랑이 그림이 보인다. 그러므로 단군은 고려 후기의 창작물이 아닌 것이다.


    ④의 주장은 청동기시대가 되어야 국가가 세워질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에 근거한다. 이덕일 교수는 ‘청동기시대 때에야 고조선이 건국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단군조선을 부인하는 논리로 귀결된다. 이는 일제 식민사학이 만들어낸 이론이다.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청동기시대에 국가가 건국되었다고 서술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20쪽)

    『과학으로 찾은 고조선』을 집필한 이종호 박사는 ‘청동기시대에 와서야 국가가 세워진다는 논리는 사실상 한국이 갖고 있는 독특한 관점이라 한다. 이집트 고대 왕조, 중남미의 잉카와 마야제국 등은 석기만 가지고도 고대 국가를 건설했다. 그러므로 청동기가 나타나야만 고대국가가 성립한다는 학설은 적어도 국제적으로 오래 전에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결국 청동기시대 운운하는 주장은 부정을 하기 위한 부정의 논리이자 일본 제국주의 스승들이 정해 준 틀로만 보겠다는 어이없는 몸부림일 뿐이다. 결국 제 뿌리에 스스로 도끼질하는 일이다.

    단군왕검의 건국 사실을 믿지 못하겠다는 자기부정의 글은 이제 교과서에서 사라져야 한다. (다음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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