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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기사]

    대한의 창세 시원 뿌리 역사 [환국 > 배달 > 조선]

    우리가 학교에서 환국・배달・조선의 역사를 올바르게 배우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대표적 사서는 김부식金富軾(1075~1151)이 기록한 『삼국사기』와 일연一然(1206∼89)이 쓴 『삼국유사』이다. 이 중 『삼국유사』에는 『삼국사기』에서 볼 수 없는 소중한 기록이 있다. 그것은 환국・배달・조선의 역사이다.

    『삼국유사』 「고조선」의 첫머리에 ‘단군왕검이 있었고(유단군왕검有壇君王儉) 국호는 조선(개국호왈조선開國號朝鮮)이라 했다’라고 하고 다음 단락에서 그 조선이 어디서 왔는지 말하고 있다. 즉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석유환국昔有桓國)’라고 해서 환국桓國의 존재를 말했다. 이어 ‘환웅천왕이 신시神市에 도시국가를 건국’한 역사가 나온다. 이 신시에 도읍을 둔 나라의 국호는 안함로安含老(579~640)가 지은 『삼성기』 上을 보면 배달이라고 분명히 밝혔다(입도신시立都神市 국칭배달國稱倍達).

    이렇게 환국・배달・조선의 역사를 말하고 있음에도 우리가 학교에서 올바르게 배우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1945년 광복을 통해 나라를 되찾았지만 빼앗긴 역사는 아직도 찾지 못한 채 식민주의 사관, 중화주의 사관의 틀에 의식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은 대한의 뿌리 역사인 환국・배달・조선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자.


    1 동서 인류문명의 고향, 최초의 나라 환桓국

    『삼국유사』에 나오는 최초의 국가 환국은 어떤 나라인가? 안함로의 『삼성기全』 上, 원동중의 『삼성기全』 下, 이맥의 『태백일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약 1만 년 전 빙하기가 물러가면서 중앙아시아에서 시베리아, 만주에 이르는 방대한 영역에 새로운 문명집단이 형성되었다. 이 문명권은 동서 2만 리, 남북 5만 리에 달하는 넓은 지역에 12개의 연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통틀어 환국桓國이라 하였다. 환국은 세계의 시원국가이자 동서 인류문명의 뿌리 국가이다. 환국의 발원지로 여겨지는 중심지는 천산, 바이칼호 지역이다. 환국의 환은 밝을 환桓 자로 하늘의 밝은 광명, 신의 광명, 태양의 광명을 상징한다. 당시 사람들은 스스로 ‘환桓’이라 부르며 하늘의 광명과 하나 되어 살아갔고 무리를 다스리는 지도자는 어진 마음으로 다스린다는 뜻을 담아 ‘환인桓仁’이라 불렀다.

    환국의 초대 환인은 안파견安巴堅 환인이다. 안파견은 ‘하늘을 받들어 아버지의 도를 확립한다’는 의미이다. 안파견을 ‘존경하는 태양과 같은 자’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환국은 BCE 7197년부터 BCE 3897년까지 3,301년 동안 존속되었고 환인은 7세까지 계승되었다. 환국은 한 분의 환인이 평균 470년을 다스린 무병장수 시대였다. 지도자와 백성들이 모두 대자연과 한마음이 되어 우주광명의 심법으로 살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사회는 어떠했을까? ‘사람들이 사귐에 친하고 멀리하는 구별이 없고, 높고 낮음의 차별이 없고, 남자와 여자의 권리가 평등하고, 노인과 젊은이가 소임을 나누었다’(「환국본기」)고 한다. 또한 수많은 백성들이 한자리에 모여 천신에게 제를 올렸는데 이때 환인이 천제를 주관하였다.

    이런 지선至善의 시대, 황금시대Golden Age였던 환국은 세월이 흐르면서 6천 년 전에 기후변화, 인구증가, 물자부족 등으로 일부 나라는 살기 좋은 환경을 찾아 이동하게 되었다. 당시 마지막 7세 지위리 환인의 아들인 환웅은 동방 백두산으로 개척의 길을 떠났다. 그리하여 한민족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2동방 대한 역사의 시작, 배달

    『삼국유사』 「고조선」에는 아버지(지위리 환인)가 아들(환웅)의 천하를 건지려는 뜻을 아시고(부지자의父知子意) 동방 태백산(지금의 백두산)으로 보냈다고 한다. 백두산에 도착한 환웅은 ‘신시神市’에 도시국가를 세우고 국호를 밝은 땅의 의미로 ‘배달倍達(밝달)’이라 했다. 환웅천황이 신시배달을 건국(BCE 3897)한 역사적 사실에서 ‘배달민족, 배달겨레, 배달의 자손, 배달의 후예’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렇듯 배달은 한민족 최초의 국가이면서 민족의 호칭이 되었다.

    배달은 인류 시원문명 국가인 환국의 정통을 계승한 장자국이다. 환국의 마지막 7세 지위리 환인으로부터 정통의 표시인 천부天符와 인印 세 개를 받고, 재세이화在世理化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사상을 그대로 계승했기 때문이다. 환웅천황은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강론하였다. 총 81자로 구성된 「천부경」은 안파견 환인 때부터 구전되다가 환웅천황 당시 문자로 옮겨졌다. 「천부경」은 인류문화사의 최초경전이다. 「삼일신고」는 환웅천황이 백성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직접 지은 총 5장(제1장 허공, 제2장 일신, 제3장 천궁, 제4장 세계, 제5장 인물), 366자로 구성된 신학서이자 인성론・수행론의 경전이다. 배달은 국가를 다스리기 위해서 삼백三伯(풍백, 우사, 운사) 제도와 오사五事(주곡主穀·주명主命·주병主病·주형主刑·주선악主善惡) 제도를 두었다. 『삼국유사』 「고조선」조에는 ‘환웅이 풍백風伯과 우사雨師와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농사와 왕명과 형벌과 질병과 선악을 비롯하여 인간 세상의 360여 가지 일[人事]을 주관하시고, 신교神敎의 진리로써 정치와 교화를 베푸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전에 국사교과서에 ‘곰과 호랑이가 등장해 인간이 되길 빌었다’고 한 것은 과연 사실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환웅천황이 백두산 일대에 문명을 개척할 당시 그 지역에는 토착민인 호족虎族과 새로 이주한 웅족熊族이 살고 있었다. 두 족속은 환웅께 하늘의 계율을 따르는 백성의 일원이 되기를 간절히 구하고 3·7(21)일간의 수도생활에 들어갔다. 이때 웅족은 마침내 순종하여 광명의 백성으로 교화되었으나, 사납고 약탈에 능한 호족은 교화에 실패하여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다.

    이 ‘웅족과 호족(웅호이족熊虎二族)’의 역사가 곰과 호랑이가 같은 굴에 살면서 사람으로 변했다는 황당한 이야기로 바뀐 것이다. 이른바 ‘단군신화’라 하여 곰과 호랑이로 해석하는 것은 고대사회의 토템사상을 배제한 식민사관에 젖은 해석인 것이다.

    배달은 시조 거발환 환웅으로부터 제18세 거불단 환웅까지 1,565년간(BCE 3897~BCE 2333년) 지속되었다.




    3 동방 한민족의 전성기 단군조선

    BCE 24세기에 마지막 거불단 환웅 때, 당시의 혼란을 잠재우고 새롭게 조선을 개국한 분이 단군왕검이다. 『삼국유사』 「고조선」을 보면 단군왕검은 환웅이 웅족 여인과 혼인하여 낳은 아들이라고 짧게 기록되어 있다. 환웅, 단군왕검이 마치 한 분 밖에 없는 것처럼 기록된 것은 배달(1,565년)과 단군조선(2,096년) 국가의 전체 역사를 올바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 참 역사는 『단군세기』와 『태백일사』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배달의 시조 거발환 환웅의 신임을 얻은 웅족 여인이 비서갑 지역의 왕검으로 임명되어 세습되었다. 13세 환웅 때는 ‘여黎’라는 왕검도 출현했다. 마지막 18세 환웅때는 신인왕검이 출현하여 백성들의 신망을 크게 얻었다. 신인왕검은 웅씨족 전체의 왕이 되어 혼란한 배달 말기에 구환을 통일하였다. 그분이 바로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을 건국한 단군왕검(BCE 2370~BCE 2241)이다.



    이후 22세 색불루 단군이 수도를 백악산으로 옮기고 44세 구물 단군이 수도를 장당경으로 옮겼다. 이렇게 수도를 옮기면서 단군조선은 47대 단군이 2,096년 동안 다스렸다. 47분의 단군을 한 분의 단군으로 잘못 기록한 『삼국유사』 「고조선」에서 ‘단군이 1,908세를 살았다(수壽는 일천구백팔세一千九百八歲)’라고 한 것은 송화강 아사달(1,048년)과 백악산 아사달(860년) 시대를 합친 기간에 해당한다.

    단군조선에는 독특한 국가 통치 제도가 있었다.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삼한으로 나누어 통치했다’(실통우삼한관경悉統于三韓管境, 『삼성기』 下), ‘단군왕검이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다스렸다’(분통삼한分統三韓, 『단군세기』)고 했듯이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통치한 것이다. 이것을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라 부른다. 진한·번한·마한 중에서 요동과 만주 지역에 걸쳐 있던 ‘진한’은 대단군인 단군이 직접 통치하고, 요서 지역에 있던 ‘번한’과 한반도에 있던 ‘마한’은 각각 부단군이 통치하였다.

    6세 달문 단군 때 신지 발리가 지은 「서효사誓効詞」라는 글에서는 삼한관경제를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진한은 저울대, 번한은 저울추, 마한은 저울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삼신-환인천제-환웅-치우천황-단군왕검의 맥을 노래한 「서효사」는 「신지비사」로도 불렸다. 이 「서효사」는 『삼국유사』와 『고려사』 「김위제전」에도 일부 기록되어 있다.


    3세 가륵 단군 때(4,100여 년 전)는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었다. 이 문자를 가림토加臨土 또는 가림다加臨多라 한다. 38자 중에서 모음 11자와 자음 14자는 현재의 한글과 그 모양이 유사하다. 이 가림토가 훈민정음과 한글의 원형임을 금방 알 수 있다.

    11세 도해 단군이 내려주신 염표문念標文은 홍익인간의 도를 실천하는 인간, 즉 태일이 어떻게 될 수 있는지를 밝히고 있다. 염표문은 마음속에 항상 새겨야 할 글로서 오늘의 한국인에게는 ‘신교문화 헌장’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고고학적 발굴을 보면 요하와 난하 사이에 있는 하가점 하층문화 지역은 단군조선의 강역이었다. 여기서 서기전 24세기 경의 비파형동검이 발굴되었다. 만주와 요서, 한반도에서 발굴되는 고인돌의 분포범위와 연대를 측정해도 역시 단군조선의 문화임을 알 수 있다. 단군조선의 역사는 일제 때 조선총독부가 주장한 ‘신화神話’가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실제 역사인 것이다.

    환국・배달・조선의 세 왕조 역사가 환인・환웅・단군의 3대 인물의 신화 이야기로 바뀐 현실을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한다. 동방문화의 주역인 우리가 환국・배달・조선의 참역사를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것은 점점 심해지는 동북아 역사전쟁을 극복하고 통일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진정한 독립운동이고 구국운동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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