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회원가입
기사목록

    [기획기사]

    「천부경」 문화와 삼일사상

    전광수 경성대 교수

    오래 전 모 대학가 정문 앞에서 동아리 학생들의 풍물패 공연을 본적이 있었다. 당시 눈에 띈 글이 있었는데 공연거리 옆 가로수 나무에 설치된 플랜카드에는 ‘소리로 신명을 깨우라’는 정갈한 붓글씨의 글귀였다. 그렇다면 그들은 풍물 공연장에서 내는 북, 징, 장구, 꽹과리의 소리가 과거 제천의식에서 행하는 예악의 형태로 신명을 깨우는 소리임을 알았다는 것일까? 아니면 역易에서 말하는 ‘북을 치고 춤추며 신명을 다 한다’는 의미를 알고 있었다는 것인가? 『설문해자』에서는 예의 어원을 제사의례에서 찾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예禮라는 글자를 분석해보면 ‘땅 귀신 기示’ 자와 ‘풍년들 풍豊’ 자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유가사상의 근원도 거슬러 올라가면 종교적 의식을 가진 인간이 천신께 제사지내는 것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천天을 안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데 천명을 안다고 말하기는 더욱 난해할 것이다. 육신은 부모로부터 받았으나 그 본성만은 하늘로부터 내려 받았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 가능한가? 그리고 그에 대한 타당성은 어떻게 입증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럼에도 유가의 궁극적 목적은 사람의 본성인 덕을 밝히어 세상을 비추어야 할 군자의 양성에 있었다. 그래서 『대학』에서는 대학지도의 첫째로 ‘재명명덕在明明德’을 말하여 인간이 천지의 밝음과 하나가 되어 사물의 실체를 꿰뚫을 것을 말하고 있다. 『주역周易』에서 공자는 “글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하지 못한다 하니 성인의 뜻은 가히 볼 수 없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진 후, 인간이 천명을 실현한다는 것은 천지일월과 사계절의 변화를 본받는 것보다 더 큰 기준이 없다고 보았다. 동아시아의 지배적 사상 가운데 하나였던 유가의 천명론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늘이 내려준 천명의 실천이라는 도덕적 삶의 방향과 가치를 전달해 왔고, 사회질서를 유지시키는 윤리적 지침을 제시하였다. 그렇다면 유가사상이 태동되기 이전 우리 한민족 정신사를 지배하였던 사상적 근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한민족 정신문화의 뿌리, 「천부경」

    『환단고기』 「태백일사」에는 「천부경」의 연원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천부경」은 천제 환인의 환국에서 입으로 전한 글이다. 환웅 대성존이 하늘의 뜻을 받들어 내려온 후 신지혁덕에게 명하여 녹도문(사슴그림문자)으로 이를 기록하였는데 고운 최치원이 신지가 남긴 전고비문을 보고 다시 첩으로 만들어 세상에 전한 것이다.”


    「천부경」에는 우주가 생겨난 근본이치와 원리를 담고 있으며, 우주의 근원을 일자一者로 보는 것에서 출발하므로 대우주, 천지, 인간과 만물 모든 것이 하나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즉 대우주의 현상계와 신의 세계 자체도 하나에서 시작된 것이기에 그 일은 모든 근원으로서의 절대일자絶對一者를 말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만물은 모두 일자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일은 무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일의 체는 무가 되고, 무의 구체적 작용이 일이 된다는 점에서 일一과 무無는 체體와 용用의 관계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조선 후기 후천개벽사상을 역학적 논리로 구체화시킨 일부 김항의 『정역正易』에서도 우주의 본체와 그 작용을 무극, 태극, 황극이라는 삼극론三極論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무극과 태극의 관계를 두고 ‘일은 일태극一太極이며, 무는 십무극十無極이라 하여 일태극의 원바탕을 무극으로 본 것이다. 서우 전병훈의 『정신철학통편』에서도 일과 무의 관계를 무극과 태극이라는 체와 용의 논리로 접근하고 있으며, 무시無始는 무극이면서 태극이고, 태극이 움직여 음양과 천지를 낳게 한다는 우주와 천지의 생성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이점에서 무극이 동動하여 일태극이 된다는 것은 「천부경」의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천부경」은 1에서 10까지 상수학적 수리를 기본골격으로 삼아 81자로 구성된 텍스트이다. 「천부경」은 한민족 정신문화의 뿌리이며 세계 정신문화의 뿌리가 되는 원리라 할 수 있다. 또 우주만물의 창시, 생성, 변화, 발전, 그리고 완성의 원리를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민족 최대의 경전이라 할 수 있다.

    「천부경」과 삼일사상

    이상의 「천부경」에서 밝히고 있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천부경」은 하나[一]에서 시작한 일이 자기의 본체를 드러내는 과정을 논리적이면서 함축적 어의로 서술되어 있다. 천지의 절대 진리인 일자一者가 현상화 하는 과정을 밝히고 있으며, 천지인 우주 삼계의 모습을 진리와 현실계, 본체와 현상계라는 체와 용으로 그려내고 있다.


    「천부경」에서 천일天一·지일地一·인일人一은, 하늘·땅·인간을 동일한 하나[一], 일신一神으로 본다는 점에서 우주만유는 절대 일자一者, 일신一神에서 나왔으며 동일한 신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3요소를 삼신일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주의 본원인 삼위일체의 체가 되고, 천지의 생성결과인 작용의 기본원리가 될 때는 용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천부경」은 하늘, 땅, 인간과 만물의 생성변화와 운행원리를 말하고 있다. 즉 어떠한 우주의 음양운동과 조화작용으로 이 같은 무위이화가 설명되어질 수 있는가에 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천부경」은 ‘우주 창조의 근원’과 ‘인간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천부경」은 무에서 시작된 일이 다시 일로 마치게 된다는 일시일종一始一終의 함축적 내용으로 일자一者와 다자多者, 무시일無始一과 석삼극析三極의 언어를 통해 하나[一]에서 시작한 일이 천지의 조화작용을 통해 우주만물이 나오고 다시 하나로 귀일하게 된다는 일즉삼·삼즉일이라는 삼일사상의 근거가 된다. 즉 일자一者로부터 다자多者가 되고, 다시 일자一者로 끝맺는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의 과정을 천지인 우주 삼계의 변화과정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천부경」의 상경, 중경, 하경의 흐름은 역학적 측면에서는 음양이라는 이원적 구조론과 천지인에 내재하고 있는 삼신三神의 조화작용이 포함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동학의 신, 인간, 자연이 혼원일기混元一氣 되어 그 속에 내재한 삼신과 삼위일체의 관련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과 인간이 혼연일체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21세기 과학문명시대의 극점에서 인간이 천지와 더불어 어떻게 미래를 설계해 나가야 하는지 그 방향성도 함께 제시해 주고 있다. 셋째, 동학의 창시자 수운이 『동경대전』에서 말한 후천의 ‘무극지운無極之運’의 무극無極과 『정역正易』에서 10수 원리로 설명하고 있는 십무극十無極은 새로운 정신·물질문명의 도래를 동시에 예견하고 있다. 이것은 「천부경」의 일즉삼一卽三·삼즉일三卽一의 원리인 삼일三一사상과 깊은 관련성이 있다. 삼일사상은 선천에서 후천을 여는 새로운 문명의 시작과 앞으로의 성숙한 인간정신의 도래를 강조한 19세기 동학과 일부의 『정역』에서 말하고 있는 무극, 태극, 황극이라는 우주 본체 삼극론이 「천부경」의 삼극三極사상에 내재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사상

    동학에서 말하는 ‘무극지운無極之運’의 무극無極과 『정역』에서 10수 원리로 밝히고 있는 십무극十無極은 동학과 정역사상이 새로운 정신·물질문명의 도래를 예견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천부경」은 동학, 정역사상과 함께 앞으로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동북아의 주역으로서 한민족이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떠한 사상으로 민족정신을 일깨워 새롭게 미래를 개척해 나갈지 그 첫걸음을 내딛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천부경」의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이 말하고자 하는 천지의 결과로서 참나를 깨닫고, 태일의 길을 열어가야 하는 인간 삶의 목적을 깨닫는 것이다. 그것이 후천개벽의 어떠한 새로운 사상과 정신, 과학문명으로 채워질지는 현재를 살아가는 바로 우리 손에 달려있는 것이다.




    기사목록



      EnglishFrenchGermanItalianJapaneseKoreanPortugueseRussianSpanishJavane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