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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칼럼

부여, 북부여, 동부여의 수수께끼

해모수의 북부여는 광개토태왕비의 ‘부여’이다. 왜냐하면 해모수는 쑹화 강 유역에 북부여를 세웠는데, 광개토태왕비에 나타난 ‘부여의 엄리대수’가 쑹화 강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부루의 동부여는 비문의 ‘북부여’이다. 그 까닭은, 해부루가 쑹화 강보다 훨씬 북쪽에 동부여를 세웠고, 비문에 시조 추모왕이 북부여에서 태어나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엄리대수(쑹화 강)를 거쳤으므로 비문의 북부여는 명백히 해부루의 동부여가 된다. 그런데 비문의 이 ‘북부여’는 나중에 대주류왕에게 패한 뒤 그 세력 중 일부는 갈사수로, 또 다른 일부는 멀리 서쪽 내몽골 지역으로 옮겨 간다. 모두루 조부 염모가 선비족 침입으로부터 구원해 준 내몽골의 부여국이 바로 모두루묘지에 나오는 동일한 북부여(연나부 부여)인 것이다.

그리고 410년 광개토태왕이 복속한 ‘동부여’는 연해주에 있던 나라도, 해부루의 동부여도 아닌 북옥저이다. 비문에 ‘동부여는 옛날 추모왕(주몽)의 속민이었다.’고 하였는데, 삼국사기에서 기원전 28년 추모왕의 북옥저(동부여) 정복 기사를 찾을 수 있다. 비문에는 광개토태왕이 동부여를 칠 때 ‘부여성’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부여성은 지린 성 눙안인데, 북옥저가 바로 눙안 일대에 있었다. 비문의 ‘동부여’가 학계 통설처럼 연해주에 있었다면 고구려 천리장성의 끝점인 부여성을 수도로 가질 이유가 없다. 또, 북부여(내몽골의 연나부 부여)의 왕 의려의 자제들이 선비족의 침입을 당해 가까운 북옥저로 피했다고 하였다. 종합하면, 비문의 ‘동부여’는 바로 북옥저라는 것밖에는 다른 세력으로 생각할 수 없다.

 

해모수의 북부여 ⇒ 광개토태왕비의 ‘부여

해부루의 동부여 ⇒ 광개토태왕비의 ‘북부여

광개토태왕비의 ‘동부여’ ⇒ 추모왕의 속민(기원전 28년 추모왕에게 복속) ⇒ 부여성(눙안) 세력 ⇒ 북옥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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