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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칼럼

국조 단군 표준영정 통일의 필요성

                                            국조 단군 표준영정 통일의 필요성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신상구(辛相龜)
                                  1. 국조 단군영정에 관한 한국 최초의 사서 기록
  충청문화역사연구소에서는 지난 2013년 말부터 충청도에 위치하고 있는 단군전을 차례로 현장답사하며 조사연구를 하고 있는데, 지원해 주는 곳이 단 한군데도 없어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 단군전마다 봉안해 놓은 단군영정(단군천진)이 달라 통일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그리하여 국조 단군영정의 통일에 대한 글들을 모아 통합적으로 정리해 보았다.
  발해국의 시조 대조영의 친동생 반안군왕 대야발(大野勃)이 지은 단기고사(檀奇古史)에, “기자조선 제1세 기자(桓西余) 12년에 단군조선 1세 개국조 단군왕검의 단군전을 평양에 세우고 단군의 화상(畵像)을 봉안 했다”고 한다. 또 “기자조선 제26대 아갑(阿甲)임금 13년에 후단군조 사절 고유선(高維先)이 단군의 화상과 단군실기(檀君實記)를 임금님께 드렸다”고 했다. 아마도 이것이 단군영정(影幀: 天眞이라고도 함)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라 하겠다.
   동사유고(東事類考)에서는 신라 진흥임금 때 솔거(率居)라는 화가가 꿈에 나타난 신인단군(神人檀君)을 그린 단군어진(檀君御眞)이 유명했다고 했고, 고려 때 학자 이규보(李奎報)는 집집마다 단군천진을 모셨다고 했으니 온 겨레의 단군 숭봉은 대단했던 것 같다.
   솔거의 이 단군영정을 본뜬 그림을 황해도 구월산의 삼성사(三聖祠)에 모셨고, 또 이것을 본뜬 것이 세상에 널리 퍼졌던 것이다.
   단군 영정에 관한 기록은 일십당 이맥(李陌, 1455-1528) 선생이 지은 <태백일사太白逸史>에서도 찾을 수 있다.

   “무오년에 아들 아갑이 등극했다. 경오년에 천왕이 고유선을 보내어 환웅과 치우와 단군왕검의 세 분 시조의 상을 반포하여 관청에서 봉숭하게 했다.”


                                                2. 국조 단군 표준영정 실태
   1910년 경술합방이 되던 해의 3월15일 한밤중이었는데 대종교(大倧敎)를 중광(重光)한 홍암나철(弘巖羅喆) 대종사를 찾아온 노인이 있었다. 강원도 명주군 석병산(해발 1054m)에서 왔다고 했다. 성명은 고상식(高上植)인데 부르기는 공공진인(空空眞人)이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황금비단에 싼 아주 오래된 초상화 한 폭을 전해 주면서 “내 집에서 대대로 모셔온 단군대황조의 천진이오. 이 천진은 신라의 명공 솔거가 그려서 오늘까지 전해온 유일본이니 잘 모시도록 하시오” 하고는 일어나 집을 나갔다고 한다.
   홍암대종사는 그 후 지백련(池白蓮)화백에게 부탁하여 다시 그린 것을 합방의 국치일 바로 전날인 8월21일 단군천진을 봉안했다. 이것이 근세 최초의 공식적인 단군 봉안이다. 오늘날 널리 보급 되어 있는 단군영정은 실로 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민족혼의 상징인 단군에 대해 말살정책을 펴던 일제치하에선 몰래 숨겨서 모셨고, 혹은 가슴에 품고 다니면서 단군성조를 지켜왔다. 이로 인해 때론 많은 피를 흘렸고 목숨까지 잃었던 것이니 눈물 겹고 처절하다.
   광복이 되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1949년 제헌국회에서 이 영정을 국조성상으로 공인했다.
   1976년 6월14일자로 당시 문화공보부 장관으로부터 ‘문화 1740-8790호’로 대종교의 단군천진이 ‘국조 단군 표준성상’으로 심사 승인 되었으며, 또 1976년 12월28일에는 ‘문화 1740-19226호’로 ‘대종교 총본사에서 제작한 것만을 존중하기로 확인함’이라는 단군 국조 성상 제작 확인까지 받은바 있다.
   그러나 이듬해 8월, 정부는 현정회(顯正會)의 것을 또 다시 정부 표준영정으로 승인해 주었다(확인번호 78-21호, 심의번호 77-27호). 이 현정회의 영정은 1969년 초상화가 김종래씨의 단군성상을 참고로 불교조각가 신상근씨가 동상을 제작 했는데 그것을 기준으로 홍석창 화백이 8개월에 걸쳐 완성한 것이다.
   이 영정은 솔거로부터 전통을 이은 대종교의 것과는 모양이 전혀 달라 항상 논란의 소지를 지니고 있다.
   당시 정부가 내세운 이유는 현정회의 것은 종교를 초월해 ‘경모의 대상’으로, 대종교의 것은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다. 결국 두 분의 국조를 만든 셈이니 말이다. 국조를 마구 만드는 나라인가. 불상이나 예수상이 제작자에 의해 약간씩 다를 순 있다. 하지만 그 기본 틀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현정회와 대종교의 단군영정은 근본적으로 기본 틀에서부터 너무 모양이 다르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북한의 단군릉에도 솔거로부터 전해진 전통 단군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특히 개국조 단군영정은 우리겨레가 조상 대대로 모셔온 전통이 중요하다. 역사와 전통이 유구한 우리 배달민족이 모셔온 개국조 단군왕검은 남북의 겨레가 이 앞에서 하나 될 수 있는 구심점이기도 하다.
   한데, 실제상황은 어떠한가. 국가 공식 문서나 일부 교과서엔 현정회의 것을, 민족종교나 일반 사회단체에선 솔거의 전통 영정을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국론분열의 원인 제공이 될 수 있다. 사실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현정회의 것을 사용하지 않으며 솔거로부터 전해지는 전통 단군영정을 봉안하고 숭봉한다. 사실상 전 국민이 사용하지 않고 있는 현정회의 것은 국조 영정으로서 가치가 없는 것이다. 우리 민족 모두가 마음으로부터 공감하고 숭봉하는 국조 단군영정이라야 한다. 
                                          3. 국조 단군 표본영정 통일의 필요성  
  국민 대통합의 구심점 회복이 시급한 때에 이제라도 두 가지로 만들어진 국조 단군영정부터 통일해야 하지 않을까.
  다행히도 지금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1번지에 위치한 국립 부여박물관에는 400년의 역사를 가진 국조 단군영정 표준본의 원본이 보관되어 있다. 이 단군영정은 독립운동가인 호석(湖石) 강우(姜虞=姜錫箕, 1862~1932)) 선생이 1920년에 평양 숭령전에서 가져온 것으로 부여군 장암면 천조궁(天祖宮)에 봉안되어 있었다. 그런데 천조궁이 산속의 외지고 한적한 당산나무 숲속에 위치하여 도난당할 우려가 있으므로 20여 년 전에 강석기 선생의 손자인 강현기씨가 국립 부여박물관에 기탁한 것이다. 이 단군영정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단군영정으로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369호로 지정되어 있다.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 임채우 교수에 의하면, 1946년 당시 대가였던 지성채(池成採) 화백이 단군전 단군 천진을 모사하기 이전에 부여군 단군 영정을 그린 화가는 2가지 설이 있다.『대종교중광육십년사』에는 궁중화가인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1892-1979)가 모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대종교요감』에는 백련(白蓮) 지운영(池雲英, 1852~1935) 화백이 모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하여 한국 정부에서는 서화 전문가에게 두 화가의 필체를 감정해서 한국 최고(最古)의 단군영정을 온전하게 밝혀내고, 그것으로 국조단군 표준영정으로 통일해 국론 대통합의 구심점을 회복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1. 대종교총본사,『대종교중광육십년사』, 1971.
    2. 대종교총본사,『대종교요감』, 1987.
    3. 박성수,『단군문화기행』, 석필, 2000.
    4. 조준희, 단군영정, 알소리 5호, 한뿌리2007
    5. 임채우,「대종교 단군 영정의 기원과 전수문제」, 국학연구원,『선도문화』 제11권,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출판부, 2011.8.
    6. 김주호, “개국조 단군영정부터 통일을, 네이버 사이트, 2014.9.25.
    7. 윤한주, “국내 최고의 단군영정을 찾다(단군문화기획 16편) - 충남 부여군 정림사지 박물관에서 만난 천진”, 브레인 미디어, 2014.10.26.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아우내 단오축제』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등 58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충남도지사상, 전국문화원연합회장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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