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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칼럼

연나라 장수 진개에게 빼앗긴 땅은 하북성 중부 호타하 남쪽 지역이다

[출처] 수구리의 우리 고대사 : 사마천 사기등 중국 고대문헌의 지리적인 고찰

--> https://tnrnfle.tistory.com/15


■ 고구려 시대 요수(遼水)는 만주 지역에 흐르는 지금의 요하(遼河)가 아니다

1) 구당서/신당서에 고구려와 관련해서 요수(遼水)가 여러번 나오고,

구오대사와 원사 내용에 나오는 요수(遼水)는 고구려 설명하는 요수로 고려시대의 요수가 아니다

중국 정사에서 요하(遼河)가 처음 나오는 문헌은 1927년에 완성된 청사고다

2) 삼국사기에 요수(遼水)가 나오며,

고려사(1310년 충숙왕)에 등장하는 원나라 황제의 조서 내용의 요수(遼水)는 원나라 영토에 있었던 요수다

요하(遼河)는 삼국사기에는 나오지 않고, 고려 초 중기에도 요하가 나타나지 않다가

 고려말에 요하가 처음 나온다

※주) 고려사는 세종대왕 때인 1451년에 완성된 고려시대 역사서로

1370년 공민왕 때의 원나라와 고려 국경선을 설명하는 요하(遼河)로 처음 등장한다

따라서

1) 고구려가 멸망하자 중국정사와 고려사에서 요수(遼水)가 사라졌고

고구려가 멸망하고 나서 700년 후인 고려 말에 요하(遼河)가 나타나기에

고구려 시대의 요수(遼水)가 만주지역에 흐르는 지금의 요하(遼河)라고 볼 근거는 하나도 없다

2) 당나라와 고구려의 경계가 요수(遼水)이니 고구려가 멸망된 후 요수(遼水)는 당나라 영토에 있게 되는데

고구려 멸망 후에 요수(遼水)가 보이지 않으니 강이름이 바뀐 것으로 봐야 한다

(당나라 시대의 요수遼水가 하북성 중남부로 흐르는 지금의 부양하滏陽河로

한비자 유도편과 염철론의 험고를 고찰하면 확인할 수 있다)

☞ 『 <고려사 (高麗史) 世家 卷第三十三 충선왕 2년(忠宣王 2年) >』

을미(AD 1310년) 원(元)이 제서(制書)를 내려 왕의 3대조를 추증하였다. 제서에서 이르기를

'... 고려국왕 왕거(王昛, 충렬왕)는, ... 반란을 일으킨 내안대왕(乃顔大王, 나얀대왕)을 추격하여,

요수(遼水)까지 앞장서서 쫓아가서 기습하여, 태산으로 계란을 눌러버리듯[泰山壓卵] 적을 압도하였으니 ...'

※ 주) 내안대왕(乃顔大王, 나얀대왕) : 원나라 세조(世祖)의 막내 동생. 남송(南宋)이 멸망한 1279년 이래

흥안령(興安嶺)의 동쪽 땅을 차지하였는데, 1287년에 동방의 여러 왕을 인솔하여 원나라를 협공하였다.

친정(親征)에 나선 원나라 세조의 급습으로 격파되고, 그는 붙잡혀 죽었다.

[원문] 乙未 元降制, 追贈王三代, 制曰, '... 高麗國王王昛,... 追叛王, 挺身於遼水, 出奇兵, 壓卵以太山,...'

■ 1370년(공민왕) 고려사 기록에 따르면 원나라와 고려와의 경계는 지금의 요하(遼河)다

☞ 『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 卷第二十七 제신 지용수(諸臣 池龍壽) >』 1370년(공민왕) 기록

(원문) 1) 元朝一統, 釐降公主, 遼瀋地面, 以爲湯沐, 因置分省.

2) 遼瀋是吾國界, 民是吾民. 今擧義兵撫安之, 如有逃隱山寨者, 恐爲各枝軍馬所害, 卽詣軍前告情.

3) 凡遼河以東, 本國疆內之民, 大小頭目等, 速自來朝, 共享爵祿.

1) 원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고 원나라 공주를 고려에 시집보내면서

요심(遼瀋, 요양과 심양) 땅을 공주의 탕목읍(湯沐邑)으로 삼도록 하고 성(省)을 분리 하였다.

※주) 탕목읍(湯沐邑) : 목욕할 비용을 마련하도록 원나라 황제가 내리는 영토

2) 요심(遼瀋, 요양과 심양)은 우리나라(고려) 경계이며, 민은 우리(고려)의 민이다.

지금 의병(義兵)을 일으켜 위로하고자 하는데,

만약 산채로 도망하는 자가 있으면 개별 군마들이 해를 입힐까 두려우니,

즉시 군대 앞으로 와서 사정을 고하라.

3) 무릇 요하 동쪽인 우리나라(고려) 강역 안의 민과 크고 작은 두목들은

속히 스스로 내조(來朝)하면 모두 관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주) 통일신라 국경선이 요하(遼河)였다는 사실이

복기대 교수를 포함한 인하대 고조선 연구소에 의해 밝혀 졌으니

통일신라의 영토를 어어 받은 고려의 초기 국경선은 당연히 요하(遼河)다

■ 요동과 요서를 구분한 기준은 요수(遼水)가 아니며

전국 시대 연나라, 한무제의 한나라, 수당시대 요동(군)의 위치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요동 위치가 바뀌었다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으니 요동 위치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본다)

1) 삼국사기에 요수(遼水)의 동쪽이 요동, 요수(遼水)의 서쪽이 요서라는 내용은 없다

2) 사마천 사기, 한서지리지 등 중국 고대 정사에 요수(遼水)를 기준으로 요동과 요서를 구분했다는 내용이 없다

한서지리지에는 현도군 고구려현에 요수 및 대요수가 나올 뿐이다

( AD 700년경 사람인 당나라 학자 장수절이 사마천 사기 몸염열전에서

【正義】遼東郡在遼水東 '요동군은 요수 동쪽에 있다'는 주석을 달았는데, 당나라 학자 장수절이

한서지리지등 고대문헌을 고찰하지 않고, 일반적인 생각인 뇌피셜을 주장한 것으로 본다)

3) 신당서(新唐書)(1) > 동이열전(東夷列傳)> 에는

【帝度遼水, 徹杠彴, 堅士心. 營馬首山, 身到城下... 당태종은 요수를 건너자, 다리를 철거하여 군사들의 결의를 다지게 하였다. 마수산에 군영을 설치한 뒤, 당태종이 (요동)성 밑에 이르러...】 의 내용에서

마수산은 한나라 시대 요서군 유성현에 있었으니

당태종이 요수를 건너 한나라 시대의 요서군 유성현 위치에 군영을 설치했고, 요동성 아래에 도착했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요수--> 한나라 요서군 --> 요동(요동성) 이므로

요서군과 요동군을 구분하는 것이 요수(遼水)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 『 < 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 현도군(玄菟郡) >』

[원문] 髙句驪 : 遼山, 遼水所出西南, 至遼隊, 入大遼水.

현도군 고구려현(髙句驪玄) : 요산(遼山)에서 요수(遼水)가 서남쪽에서 나오는데,

요동군 요대현(遼隊縣)에 이르러, 대요수(大遼水)로 들어간다.

■ 사마천 사기와 한서지리지에 따르면

연나라 장수 진개에게 빼앗긴 1천여리의 땅은 하북성 중부 호타하 남쪽 지역이다6406b363c3fed8134d23e202a792b7c9.jpg

전국시대 연나라 장수 진개가 동호(고조선)을 급습하여 1천여리의 땅을 빼앗아서

상곡군, 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요동군의 연5군을 설치했다

2) 한서지리지 연나라(연지)에 따르면

상곡군, 대군, 안문군은 태행산맥 서쪽에 있고, 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요동군은 태행산맥 동쪽에 있다

3) 사마천 사기 진섭세가에 따르면

어양군을 지키기 위해 대택향에 군사를 주둔시켰는데 대택향(대륙택향)은 대륙택 부근의 마을로 추정되니

어양군이 대륙택 근처이고, 하북성 형태시 북부지역으로 거록현 서북쪽 부근이다

따라서 상곡군, 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요동군은 하북성 중부 호타하 남쪽지역에 있었다

4) 사마천 사기 조선열전에 따르면

전국시대 연나라 요동군이 진시황의 진나라 요동군이고,

진나라 요동군을 한나라 요동군과 요동외요로 패수를 기준으로 나누었다

한나라 요동외요는 진고공지이고, 상하장(상하운장)이고 위만조선의 영토였다

※주) 요동외요란 요동군 밖으로 순찰을 도는 지역을 말하며, 진고공지는 진나라 영토였지만 비워둔 땅이고

상하장은 한서지리지에 따르면 상하운장으로 강으로 둘려 쌓인 상운장과 하운장을 나타낸다

5) 연나라 장수 진개가 빼앗은 1천여리는 직선거리로 보면 9백리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사마천 사기 흉노열전 내용으로 보면 어양군과 우북평군은 인접해 있었고, 어양군과 요서군도 인접해 있었고,

어양군과 상곡군도 인접해 있었으니, 어양군 북쪽에 요서군, 어양군 동쪽에 우북평군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1) 상곡군, 어양군, 우북평군이 9백리, 상곡군, 요서군, 요동군이 9백리로 보이니

개별 군들의 직선 거리는 3백리로 추정된다(9백리 / 3 = 3백리)

(2) 전국시대 연나라 요동군을 전한의 요동군과 요동외요로 나누었으니

전국시대 연나라 요동군 3백리 중에서 한나라 요동군 2백리, 한나라 요동외요는 1백리로 추정할 수 있다

(3) 산서성 양천시 서쪽인 진중시에서 하북성 형수시 무강현의 거리가 대략 350km로 9백리 정도이고

하북성 형수시 무강현의 넓이가 대략 30 km이니 1백리로 볼 수 있다.

6) 한서지리지에 태행산맥 동쪽의 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요동군을 큰 강으로 구분한다는 내용이 없으니

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요동군은 하북성 중부의 큰강인 부양하와 호타하 사이로 추정된다

또한 요동군이 가장 동쪽에 위치하니 요동군 동쪽인 진고공지가 위만조선 영토인 1백리로

형수시 무강현이 1백리이기에 하북성 중동부 형수시 무강현이 낙랑군의 위치이고 위만조선의 영토였다.

※ 주) 위만조선의 영토였던 형수시 무강현은 호타하, 부양하, 패수인 천평구로 둘러쌓인 자연 요새다

나룻배를 이용해서 갈석산(찬황현 장석암)을 우측으로 끼고 부양하인 고대 하수를 따라서 올라가면

주나라 수도인 낙양과 전한의 수도인 서안에 어렵지 않게 도착할 수 있으며

1~2개의 강을 건너면 하북성 보정시와 하북성 진황도시로 갈 수 있기에 형수시 무강현은 교통의 요지다

☞ 『 < 사마천 사기(史記) 卷百十 「흉노열전(匈奴列傳)」 >』

그 후 연나라의 명장 진개가 호(동호, 고조선)에 인질로 가 있으면서 그들의 신임을 얻었다. 연나라로 돌아온 후

군대를 이끌고 동호를 습격해 패주시켰으며, 이때 동호(고조선)은 1천여 리나 물러갔다

연나라 역시 조양(造陽)에서 양평(襄平)에 이르는 지역에 장성을 쌓았다.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에

군을 설치하여 호(동호, 고조선)을 방어했다.

[원문] 其後燕有賢將秦開, 為質於胡, 胡甚信之. 歸而襲破走東胡, 東胡卻千餘里.

燕亦筑長城, 自造陽至襄平. 置上谷, 漁陽, 右北平, 遼西, 遼東郡以拒胡.

☞ 『 < 한서지리지 연나라(燕地) >』

(태행산맥) 동쪽에는 어양(漁陽)과 우북평(右北平)과 요서(遼西)와 요동(遼東)이 있고,

(태행산맥) 서쪽에는 상곡(上谷)과 대군(代郡)과 안문(雁門)이 있다.

[원문] 東有漁陽右北平遼西遼東,西有上谷代郡雁門.

☞ 『 < 사마천 사기(史記) 卷四十八 「진섭세가(陳涉世家)」 >』

진시황 2세 원년(BC 209년) 7월, 빈민가 백성들을 징발하여 수자리를 보내 어양(漁陽)을 지키게 하여

900명이 대택향(大澤鄕)에 주둔하게 되었다.

※주) 대택향(大澤鄕)은 대륙택향(大陸澤鄕)이니 대륙택(大陸澤)부근의 마을이다

[원문] (秦始皇) 二世元年七月, 發閭左適戍漁陽, 九百人屯大澤鄉.

☞ 『 < 한서지리지 거록군(鉅鹿郡) >』

鉅鹿 : 禹貢大陸澤在北. 거록현 : 우공의 대륙택(大陸澤)이 (거록현) 북쪽에 있다.

☞ 『 < 사마천 사기(史記) 卷百十五 「조선열전(朝鮮列傳)」 >』

(위만)조선의 왕 위만은 옛 연(燕)나라 사람이다. 당초 전국시대 연나라의 전성기 때 진번조선을 공략하여

 복속시키고 관리를 두고 변방에 성루를 쌓았다.

(위만조선 위치는) 진시황의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망시켰을 때 진나라 요동외요(요동군이 바깥을 순찰하는

  지역)에 속했다. 한나라가 일어나자 그곳(요동외요)가 멀어 지키기가 어려워 다시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에 이르러 경계를 정하고 연나라에 속하게 하였다.

한나라 연왕 노관이 배반하여 흉노로 들어가자 위만도 망명하여 무리 천여 명을 모아 상투를 틀고 만이의 옷을

입고는 동쪽으로 달아나 변경을 나와 패수를 건너 진시황 진(秦)나라 영토였던 옛 비어 있는

(진고공지) 상하장에 거주하면서, 점차 진번과 조선의 만이와 옛 연나라와 제나라의 망명자들을 복속시켜

 그들의 왕이 되어 왕험을 도읍으로 정했다

[원문] 朝鮮王滿者, 故燕人也. 自始全燕時嘗略屬真番朝鮮, 為置吏, 筑鄣塞.

秦滅燕,屬遼東外徼. 漢興, 為其遠難守, 復修遼東故塞, 至浿水為界, 屬燕.

燕王盧綰反, 入匈奴, 滿亡命, 聚黨千餘人, 魋結蠻夷服而東走出塞, 渡浿水,

居秦故空地上下鄣, 稍役屬真番, 朝鮮蠻夷及故燕, 齊亡命者王之, 都王險.

■ 후한서 군국지의 거리로 고찰해도

연나라 5군(상곡군, 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요동군)의 위치는 하북성 중부지역이다

1) 후한서 군국지에 나오는 낙양으로 부터 거리

-. 어양군 :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2천리

-. 우북평군 :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2천 3백리

(어양군과 우북평군의 거리는 3백리 = 2천 3백리 - 2천리)

-. 요서군 :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3천 3백리

-. 요동군 :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3천 6백리

(요서와 요동의 거리는 3백리= 3천6백리 - 3천 3백리)

-. 상곡군 :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3천 2백리

-. 대군 :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2천 3백리

(대군은 상곡군의 남쪽에 있다)

(연 5군간의 거리 계산시 고려사항)

- 한서 지리지에 상곡군과 대군은 서쪽에 있고, 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요동군은 동쪽에 있다고 했으니

서쪽, 동쪽의 기준은 태행산맥으로 본다(상곡군, 대군은 태행산맥 서쪽에 있다)

-. 흉노열전에 한안국이 어양군에서 흉노를 방어하다가 우북평군으로 물러나서 흉노를 방어했다고 했으니

어양군과 우북평군은 이웃에 있었다(어양군과 우북평군의 거리는 3백리= 2천 3백리 - 2천리)

-. 사마천 사기 위장군 표기열전에 BC 127년 흉노가 침입해 요서태수를 살해하고, 어양백성 2천여명을

약탈했으나 한안국 장군의 군사가 패했다고 했으니 요서군과 어양군은 이웃에 있었다

-. 사마천 사기 한장유열전에 흉노가 상곡,어양 일대를 침입하여 한안국이 출정하였으니 이기지 못했다고

했으니 상곡군과 어양군은 이웃에 있었다

-. 요서군와 요동군은 이웃에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요서와 요동의 거리는 3백리= 3천6백리 - 3천 3백리)

-. 어양군과 상곡군의 거리는 후한서 군국지의 거리로 검증하기에는 정보가 부족하다

-. 어양군과 요서군의 거리, 우북평군과 요동군의 거리도 후한서 군국지의 거리로 검증하기에는

 정보가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양군과 요서군의 거리가 후한서 군국지 기준 1천 3백리 = 요서 3천 3백리 - 어양 2천리

우북평군과 요동군의 거리가 후한서 군국지 기준 1천 3백리 = 요동 3천 6백리 - 우북평 2천 3백리

(우북평군 동쪽에 요서군이 있었다면 우북평군과 요서군의 거리는 1천리이니 뭔가 이상하다)

어양군과 상곡군과의 거리가 후한서 군국지 기준 1천 2백리 = 상곡 3천 2백리 - 어양 2천리

는 춘추필법에 의해 1천리 정도 부풀려진 것이다

2) 사마천 사기 흉노열전의 1천여리가 삼국지 위서동이전에서 2천여리로 1천여리 부풀려 졌으니

삼국지를 참고하여 작성된(삼국지 3세기 중반 이후 작성, 후한서 5세기 초반 작성)

후한서 군국지의 상곡군, 요서군, 요동군의 거리를 1천리 제하면 어느정도 정확한 거리가 될 것이다

- 어양군과 요서군의 거리는 3백리 = 3천 3백리 - 1천리 - 2천리

- 우북평군과 요동군과 거리는 3백리= 3천 6백리 - 1천리 - 2천 3백리

- 어양군과 상곡군의 거리는 2백리 = 3천 2백리 - 1천리 - 2천리

후한서 군군지의 춘추필법의 거리 1천리를 제외했기에 어느정도 믿을 만한 거리가 된다

따라서 하북성 중부 형태시 거록현 서북쪽 대륙택 부근의 어양군을 기준으로

상곡. 우북평, 요서, 요동의 위치를 춘추필법의 1천리를 제거한 거리로 위치를 비정한다면

(1) 상곡군의 위치는 선서성 중부 양천시 지역이 되고,

(2) 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요동군의 위치는 하북성 중부 호타하와 부양하 사이가 된다.

☞ 『 < 삼국지(三國志) 卷三十 위서동이전(魏書東夷傳) 「한(韓)」 >』

(전국시대) 연나라는 장군 진개(秦開)를 파견하여 [고조선의] 서쪽 지방을 침공하고 2천여리의 땅을 빼앗아

만번한(滿番汗)에 이르는 지역을 (고조선과의) 경계로 삼았다.

[원문] 燕乃遣將秦開攻其西方, 取地二千餘里, 至滿番汗爲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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