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9 - 대한사랑 15호(202503)
P. 79
2025. 3
상고 영역을 한반도에 국한시키는 결과를 낳게 써 단군의 전조선과 기자의 후조선, 위만조선
되고, 이후 1402년 태종의 명으로 지은 『동국 을 포함한 3조선으로 인식하고 평양을 근거지
사략』에서 구체화되었다. 로 건립한 것으로 기록하였다. 단군과 기자의
『역대세년가』는 권근의 아들인 권도(權蹈)가 근거지를 평양에 비정한 것은 상고시대 강역을
1436년 세종의 명에 따라 윤회(尹淮)와 함께 편 한반도 중심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으로써,
찬한 시문으로 역사서를 통해 흥망의 이치를 고구려 성립과정에서 등장하는 지명에 대해 대
잘 알기 위한 세종의 의지가 크게 반영된 것이 부분 한반도 내로 비정하였으며, 발해를 말갈
다. 하편인 「동국세년가」는 단군조선에서 고려 과 연결시켜 압록강과 두만강 아래의 한반도
말까지 역대 각 국과 왕의 명칭 및 치적을 주로 중심주의가 강화된다고 할 수 있다.
소개하는데, 『제왕운기』의 영향을 많이 받고 『응제시주』는 권근이 지은 『응제시』에 권근
있다. 다만 『제왕운기』가 단군을 중심으로 상 의 손자 권람이 주석을 더해 1462년 간행되었
고사에 등장하는 모든 국가들을 단군의 후예 는데, 조선의 자신감이 반영되어 중국과의 항
로 보고 있는 것과는 달리 「동국세년가」는 조 쟁 기록을 자세히 기록하고 낙랑과 현도를 요
선 땅에서 이루어진 정치적 변동의 역사로 이 동에 비정, 고구려의 초기 지명을 요동에 비정
해하고 있으며 혈연적 계승 입장이 오히려 후 하는 등 요동 지역에 대한 관심을 표출하고 있
퇴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동국세년가」에서 보 다. 특히 기자의 영역, 낙랑과 현도, 고구려 초
이는 고대사에 대한 영역관으로 우리나라 지리 기 영역을 요동으로 비정하였는데, 『요동지』,
에 대한 설명에서 “요동에 별천지가 있으니, 산 『거란국지』 등을 통해 구체적인 지명 비정을
천 풍기가 저절로 구분이 되고 삼면으로 바다 시도하였다. 여기서 보이는 강역인식은 조선
가 둘러싸고 북으로는 대륙이 있어, 가운데 만 후기에 상고사의 영역을 요동지역으로까지 확
리가 되는 고국이 있네”라고 적으면서 독립된, 장해 보려는 이들이 『응제시주』를 인용하고 있
강대한 힘을 지닌 국가로서의 자부심을 보이고 어 조선후기 역사지리학자들의 고대시기에 대
있다. 또한 기자조선에 대해 정보가 상세해지 한 확대된 영역관의 정립에 일정 부분 기여하
고 권근의 삼한설을 수용함과 동시에 비류를 고 있다. 이러한 점은 조선초 관찬사서와 달리
성천에 추정해 한반도 중심으로 상고사를 이해 이들 시가류에서 한반도 중심주의에 반한 다양
하고 있다. 성을 제시하고 있으며 후기 역사지리인식의 확
『용비어천가』에서는 「동국세년가」의 역사지 립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 문건이라고 할 수
리인식와 마찬가지로 한반도 위주로 이해하는 있다.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서는 삼조선의 구도로
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