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1 - 대한사랑 15호(20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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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현장 ②
서거 51주기
박열 의사 추모식
글.사진 강인한 기자
지난 1월 17일(금) 문경시 마성면에 있는 박 1923년에 ‘불령사’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했
열의사 기념관에서 기관장 및 시민 등 200여 는데, 일본인 부인인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명이 참석한 가운데<박열 의사 서거 51주기 일본 황태자의 혼례식 때 암살을 기도한 죄
추모제>를 봉행하였다. 특히 이날 추모제에 로 체포되었다. 1926년 가네코 후미코는 감
는 박열의사의 손자인 박현해(47세)씨도 참석 옥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고, 박열은 해방
하여 남다른 의미를 가졌다. 후 풀려났다. 이후 재일본조선거류민단을 조
박열 의사는 1902년 문경시 모전동에서 직하고 초대단장을 맡았다. 1946년 김구의
출생하였다. 삼일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퇴학 부탁으로 3의사(윤봉길, 이봉창, 백정기)유해
당하고 1919년 일본 도쿄로 건너가 사회주 발굴 봉환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949년 귀
의자와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라기 보다는 반제 국했다가 한국전쟁 당시 납북되었다. 1990
국주의자)들과 교류하게 되었다. 이후 의열단, 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에추서됐다. 2018년 가
흑우회 등을 조직했고, 흑도회라는 아나키즘 네코 후미코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
단체에 가담하였다. 다.
서원(박열기념사업회 이사장) 박현배(박열의사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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