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백제의 천하관

2014.02.10 18:06

장수왕 조회 수:3405

“일본서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봄 3월, 진구(神功) 황태후는 아라다 와케(荒田別)와 시카가 와케(鹿我別)를 장군으로 삼아 신라로 출병시켰다. (중략) 탁순(대구)에 이르러 아라다 와케는 백제의 장군 사백과 개로, 목라근자, 사사노궤에게 지원군을 요청하였다. 모두 모여 신라를 쳐서 크게 깨뜨렸다. (중략) 아라다 와케는 남만(南蠻, 남쪽의 오랑캐)을 무찔러 백제에 속하게 하였다. (후략)

- 왜국 진구 황태후 섭정 49(369)년 조

 

 

서기 369년, 백제와 야마토(倭)의 동맹군이 출병하여 신라와 가야를 쳐부수고, 전라남도의 소국들을 정벌하였다. 이는 고구려 제16대 국강상왕이 백제로 쳐 내려오는 계기가 된 사건이기도 하다. 백제, 야마토, 신라, 가야 7국, 남만, 비리, 벽중, 포미, 지반, 고사 등 수많은 나라가 얽혀 싸웠으니 한반도 남부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고, 백제와 야마토는 이 수많은 나라들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남만(南蠻)이라는 표현인데, 남만은 전라남도의 마한 잔존 세력을 오랑캐로 멸시해 부른 말이다. 그런데 신기한 점이 있다. 분명 이 남만이란 세력은 위 기록의 주체인 일본의 서쪽에 있지, 남쪽에 없기 때문이다. 기록자인 일본의 입장에서는 일본의 서쪽에 있었으니 서융(西戎)이라고 하면 될 텐데, 왜 굳이 남만이라고 했을까?

바로 일본서기가 백제 측의 기록을 참고한 것이다. 백제의 입장에서는 남쪽의 전라남도에 있었으므로 남만이라고 해도 된다. 그렇다면 일본서기를 쓴 사람이 백제 측의 전쟁 기록을 그대로 참고하면서 백제에서 일본으로 원정의 주체만 바꾸고, 남만을 서융으로 바꿔 쓰는 데에는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결국, 마한의 잔재를 가리키는 남만이란 표현은 일본에서 일컬은 것이 아니라 백제에서 일컬은 것이다. 이는 백제의 독자적인 천하관을 보여 준다. 일반적으로 남만은 동이, 서융, 북적과 함께 오랑캐를 가리키는 말로서, 중국에서 주로 썼던 표현이다.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고 주변 민족은 오랑캐로 취급하는 중국의 천하관은 주변국을 동서남북의 방위에 따라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라고 일컬었다. 이러한 천하관을 백제가 받아들여 남쪽의 마한 잔존 세력을 남만으로 비칭하였던 것이다. 백제는 이를 널리 적용하여 고구려는 북적(北狄), 신라는 동이(東夷)로 비칭하지 않았을까?

고구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고구려에서는 실제로 신라를 동이로 비칭하였다. 마찬가지로 백제는 남만, 숙신은 북적으로 비칭하였을 것이다.

이를 통하여 일본서기의 위 기사는 백제가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지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귀중한 기록임을 알 수 있다.

 

백제는 스스로의 천하관에 따라 대국(大國) 체제를 갖추었다. 대표적으로 제21대 개로왕은 자신을 대왕(大王)으로 칭하고, 대왕을 보좌하는 좌현왕(左賢王), 우현왕(右賢王)을 두었다.

 

 

행관군장군 우현왕 여기(餘紀)를 관군장군으로, 행정로장군 좌현왕 여곤(餘昆)과 행정로장군 여훈(餘暈)을 정로장군으로 삼았다.

- “송서” 이만전 백제

  

 

한 마디로 백제의 장군 여기와 여곤이 각각 좌현왕, 우현왕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제국(帝國)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우현왕은 서쪽의 요서 지방을, 좌현왕은 동쪽의 일본 열도를 관장하였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국가의 중앙에 있는 백제 대왕은 고구려의 태왕, 중국의 황제, 흉노의 선우, 유목 민족의 가한과 대등한 위격이다. 신하들은 그를 대왕 폐하라고 불렀다. 이는 백제의 대왕이 곧 하늘의 아들인 천자, 황제였음을 말해 준다. 또, 동성왕 때에는 신하들을 매라왕, 도한왕, 벽중후, 불사후 등으로 삼았는데, 이들은 백제 대왕의 아래에 있는 제후들이었다. 이처럼 백제는 흉노의 좌 · 우현왕 제도와 중국의 왕후(王侯) 제도를 받아들여 대국의 질서를 갖추었던 것이다.

 

백제는 개로왕 이전부터 대왕을 칭하였을 것이다. 일례로 일본의 “신찬성씨록”에는 백제의 근초고왕을 ‘속고 대왕(速古大王)’으로 표기하는데, 이는 근초고왕도 자주국의 군주로서 대왕을 칭하였음을 말해 주는 증거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또 다른 예를 들면, 광개토왕비에는 백제의 군주를 「잔주(殘主)」라고 표현하지, 어라하 비슷하게 표현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주」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황제 또는 왕을 다르게 일컫는 말이다. 이 또한 전성기가 끝나 가던 아신왕 때에도 대왕을 칭하였음을 말해 주지 않을까?

 

우리는 백제(百濟) 하면 떠오르는 것이 흔히 의자왕과 삼천 궁녀 정도라고 한다. 또, 고구려에 굴종하고 신라에 뒤통수나 맞는 것이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백제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백제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큰 나라였다. 백제는 대왕을 중심으로 한 자주적 세계관을 가지고 마한과 일본의 조공을 받으며 드넓은 바다를 누빈 대국이었다.

 

- 작성자 장수왕(mailed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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