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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4700년전, 치우천황께서 신농씨 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유망楡罔을 추방하고 새로운 정치를 크게 펼치자 서방 토착민의 우두머리였던 헌원이 천자가 되려는 야망을 품고 치우천황에게 도전했다. 

이에 천황께서 탁록을 중심으로 황제헌원과 10년에 걸쳐 73회의 전투를 했는데, 이 때 치우천환은 큰 안개를 일으켜 헌원을 사로 잡아 신하로 삼고 동방의 문화를 전수해주었다. 그런데 사마천은 도리어 ‘황제가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고 역사를 왜곡하는 망필妄筆을 하였다. 

사마천은 중국 역사의 시조인 황제헌원을 천자天子, 즉 동북아의 주도권자로 만들려 했다. 헌원이 천자가 되면 중국은 그 출발부터 천자의 나라가 된다. 그리하여 ‘중국이 천차국으로 천하의 중심이며 주변민족은 모두 야만족’이라는 중화사관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다. 


history_7.png 배달국 14대 자오지 천황은 법력이 고강하고 신용관절하며 용병술이 뛰어났다. 구리와 철을 채위하여 무기를 만들고 전쟁 때마다 안개를 일으켜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신농국을 병합하고 황제를 무릎꿇렸으며 회대淮岱(산동성과 안휘, 강소성)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후에 무신의 원조로 추앙받았다.

『사기집해』는“ 응소應劭가‘ 치우는 옛 천자[蚩尤古天子]’라고 말했다”라는 말을 기록하였다. 천하의 지배자는 헌원이 아니라 치우천황이었다는 말이다.  『사기정의』는 “치우 군대가 금속 투구를 머리에 쓰고 큰 쇠뇌[太弩]와 같은 병장기를 갖추고 출전하여 그 위엄을 천하에 떨쳤다” 라고 하였다. 

최근 탁록의 현장에는 황제 헌원과 함께 동방의 뿌리 역사의 주인공인 신농씨와 치우천황을 그들의 조상으로 모셔놓은 큰 사당이 세워졌다. 그 이름은 중화삼조당이다. 본래 중국은 황제와 염제신농씨만 서방 한족의 시조라 주장해왔는데, 치우천황까지 시조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에 대해 하버드 대학의 바잉턴M. Byington 박사는 ‘1949년까지 중앙정부가 동북지역을 장기적으로 통치한 적이 없어서 장차 한국이 통일될 경우 조선족의 독립운동을 막을 역사적 정당성이 없기 때문’이라 한다. 삼조당을 지어 황제, 염제, 치우를 ‘중국 민족의 근본을 다진 인물’로 설정한 중국은 치우천황 후반기의 주 활동무대였던 탁록을 ‘중국 5천년 문명사의 요람’이자 ‘중화민족의 주요 발상지 중의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