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북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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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역사의 뿌리를 밑둥이까지 들어낸 이마니시 류는 한민족사의 중간 역사도 가위질하여 고대 중국와 일본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그는 과거 중국이 조작 왜곡한 한국 고대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한사군 대동강설이다. 그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처럼 ‘귀신도 하지 못할 땅 뜨는 재주’를 부려서, 고대 요서에 있던 지명을 대동강변에 옮겨놓은 것이다. 거기에 낙랑 임둔 진번 현도군이라 이름을 붙인 그는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위원이 되어 점제현신사비 같은 가짜 유물을 대동강변에 묻어놓고 한나라 4군의 유물이 나왔다고 사기극을 벌였다.

5history_17.jpg 『환단고기』에 따르면, 고조선의 중심이었던 진조선이 망하고(BCE 238), 40여 년 후 번조선도 중국 사람 위만에게 탈취되는(BCE 194) 동안, 진조선 땅에서 일어난(BCE 239) 북부여가 고조선의 대통을 계승하였다. 하지만 한국의 강단사학자 대부분은 이러한 북부여를 무시하고, ‘한 무제가 설치한 한사군이 위만정권 멸망 이후 한민족을 지배하였다’고 주장한다.

중국 사서에서 한사군에 대한 기록은 『사기』「조선열전」에 가장 먼저 나타난다. 그런데 저자 사마천(BCE 135~BCE 90)은 한사군이 설치되는 직접적 계기가 된 ‘한 나라와 고조선(위만정권) 사이의 전쟁’(BCE 109년)을 목격하였지만, ‘조선을 평정하고 군을 설치했다’고 할 뿐, 4군의 구체적 이름과 위치를 기록하지 않았다. 역사 기록을 현장 답사로 꼼꼼히 확인했다는 사마천이 한사군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은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4군의 구체적 명칭은 사마천이 죽고 백 년이 더 지나서, 중화中華사관이 뚜렷한 반고가 쓴 『한서』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한서』의 기록도 한사군의 실체에 대해 명확하지 못하다.

중국 사서의 일관성 없는 기록은, 한사군에 대한『사기』의 그 짤막한 기록이 과연 사마천 자신의 서술인지 의문마저 들게 한다. 『사기』의 이 구절은 후대의 역사학자가 삽입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한사군이란 것이 설치된 적이 없기 때문에 사마천은 한사군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못한 것이다. 

그 진실을 우리는『환단고기』에 수록된 『북부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나라 무제가 우거를 멸하더니 그곳에 4군을 설치하려고 군대를 일으켜 쳐들어왔다. 이에 고두막한이 구국의 의병을 일으켜 한나라를 격파하였다”라는 기록으로 볼 때, 한사군은 한나라의 희망사항이었지 결코 실현된 적이 없었다.

이렇게 그 실존 사실조차 의심스러운 한사군을 한국 강단사학계는 확고부동한 사실로 말할 뿐 아니라, 그 위치를‘ 낙랑-대동강 유역, 현도-압록강 중류, 진번-황해도, 임둔-함경남도’등으로 비정한다. 하지만 이 한사군은 일제가 조선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조작한 내용일 뿐이다. 일제는 한국사의 주요 흐름을 ‘한사군 → 임나일본부 → 조선총독부’로 연결시키고, ‘조선의 역사는 한사군이라는 중국의 식민지로 출발하였으니 일제의 지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세웠다. 이것을 해방 후에 등장한 강단사학자들이 실증주의란 미명 아래 한국사의 주류 학설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견해를 제시하는 학자를 재야사학자로 몰아 강단사학계에서 추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