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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칼럼

[k- route를 가다] “고인돌 루트(dolmen Route)”의 실체 6

단군조선의 후예들, 일본 열도로 개척의 길을 떠나다 1 


 세계고인돌연구학회 (World Dolmen Reserch Academy) 창립
           이매림 (사) 대한사랑 수석본부장 /미래로 가는 바른역사협의회 사무총장


단군조선의 후예들, 일본 열도로 개척의 길을 떠나다 1
 (대마도와 이끼섬을 건너 큐슈로 )

일본 초기 국가 성립사를 속 시원히 이야기하는 양국의 학자들이 별로 없는 듯하다. 일본사 책을 읽어봐도 고대 조선반도와 일본열도와의 교류사에 대해 언급을 잘하지 않는다.  가닥이 잡힌 부분은 잘 알려진 왕인박사 이야기 정도에서 삼국시대 일본에 여러 문화를 많이 전해줬다는 정도다. 아마 문명교류사 차원의 우위 문제로 인식하기에 깊이 이야기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할지도 모른다.

과거 일본은 제국주의 시절 조선을 강점하고 자신들이 ‘조선’의 역사를 만들었다. 만드는 과정의 역사는 다음 기회에 실증자료를 소개하며 하나하나 되짚어 볼 계획이다. 

 백제가 멸망하고 그 후예들은 분국이었던 일본열도로 대거 이동하였고 대륙의 백제분국들 제후들은 조상의 묘를 다시 찾아 볼 수 없음을 애통해 하며 중국의 역사로 흡수되어 들어갔다. 그리고 일본 열도로 들어 온 고구려인, 이주 신라인 등과 함께 일본 열도에서 여러 가지 성(姓)씨를 만들어 사용하며 현재의 일본인으로 살고 있다. 현재 일본 아베신조 총리의 아버지 고(考) 아베 신타로 외상도 “ 나는 조선인이다”라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자주 이야기 했다는 증언이 나왔었다. 

빼앗긴 백제사의 회복은 일본열도에서 이주자들에 의해 건국의 의지로 드러나 마침내 7세기 ‘일본’이란 이름으로 다시 재탄생 한다. 그 이전은 왜(倭)가 공식 호칭이었다. 일본이란 국호는 원래 삼한사람들이 늘 고대 일본열도를 보고 부르던 호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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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일본지명사서 국호편 

그리고 그들이 꿈꾸고자 했던 일본 시원역사를 첫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속에 담았다. 일본서기는 백제계 사료인 백제삼서인 <백제기, 백제본기, 백제신찬>과 야마토정권 유력씨족들의 기록을 기초로 편찬하였는데 백제삼서는 백제멸망 후 백제왕족들이 중심이 되어 편찬한 것으로 자신들 입장 중심으로 역사를 새롭게 기술한 역사서인 것이다.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읽어본 분들이 하나 같이 이야기하는 것이 "도대체 한국사와 어떻게 연결고리를 찾아야 되는가?" 하는 것이다. 일본 역사서에 등장하는 내용은 틀림없이 한국고대사와 연결되는데 혼동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유는 바로 두 역사서가 연대기를 따라 한국사와 오버랩이 되도록 만든 것이 아니라 조선시원역사인 환인-환웅-단군역사와 고구려의 건국초기 역사와 백제의 역사와 가야의 역사를 연대시기와 크게 상관하지 않고 조합하여 일본 창세역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본 국조신인 천조대신과 동생 소잔오존의 이야기는 가야와 관련된 역사이다. 천조대신과 남동생 소잔오존이 고대한국에 살았다는 것은 조선총독부의 조선인 역사 교육 방침에 있다. 이 내용도 다음에 공개하겠다. 

춘천과 고령, 거창 가조 등  세 지역이 일본 학자들에게서 거론되고 연구되고 있는데 일본서기의 내용과 정합한 곳은 거창 가조지역이었음이 최근 답사결과 밝혀졌다. 천조대신이 숨었다는 천석굴(天石窟)도 최근 향토사학자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최근 직접 답사한 동영상으로 공개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그리고 일본 건국사인 만세일계 천황가의 시작인 신무천황(神武天皇진무덴노)은 단군조선 시기의 장군 “협야후”의 이야기이다. 단군세기에는 35세 사벌단군 때 언파불합이 웅습(구마소)을 평정했고 36세 매륵단군 때 협야후배반명이 왜 열도를 평정하고 천황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일본서기에는 언파불합은 신무천황의 아버지이고 신무천황의 어릴 때 이름이 “협야”라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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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고대사의 가장 충격적인 진실이 환단고기와 일치하고 있는데 왜 주류역사학자들은 환빠, 유사역사학 타령인가? 

그런데 일본 역사서에는 천조대신 가야사가 먼저 기술되고 단군조선 신무천황 역사가 후에 기술되어 순서가 바뀌어 있다. 그러니 당연히 한국사와 연결시키려면 혼동이 생기는 것이다.

역사의 연대 스토리는 바꿀 수가 있지만 발굴되는 고고학적 유물유적의 연대기는 임의대로 순서를 돌릴 수가 없다. 특히 발굴된 고분과 유물은 한반도의 역사와 명확히 연결고리를 누구도 알 수 있게 해 준다.  지금까지 한국사에서 일본과의 교류사에 있어 단군조선은 배제되고 삼국시대부터 연결된 것인 양 기술하고 있고, 일본도 왜 같은 입장을 취하는지에 대한 의문점이 고인돌 일본 편을 통해 시원하게 해소될 것이다. 

한반도와 일본열도와의 인연은 사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훨씬 이전으로 올라간다. 그것은 기록이 없다고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유적 유물이 있기 때문에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유심히 봐야 할 것은 바로 지금까지 추적한 ‘고인돌’루트와 같은 고대 고분(무덤)의 형태이다. 고대 역사의 주인공이 공간을 이동할 때 즉 다른 곳으로 개척이나 이동을 하면 그 지역에서 정착하면서도 본인이 원래 가지고 있던 고유성을 문화를 그대로 존속시키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묘장제, 무덤의 형태이다. 본래 자기문화권의 묘장제를 유지해 나가면서 차츰 정착 지역에 맞는 문화로 변형이 되는 것이다.

한국의 고대 고분군은 돌을 소재로 하여 피장자를 묻는 방식 문화다. 돌무덤은 종류에 따라 돌무지무덤(적석총), 돌덧널무덤(석곽묘, 石槨墓]), 돌널무덤(석관묘), 고인돌무덤(지석묘), 돌방무덤(석실묘) 등이 있다. 시기별로 변형이 되는 것으로 후에는 항아리 형태의 옹관묘나 나무널[木棺] 형태도 나타난다. 

적석총이나 고인돌 축조자체가 많은 인력이 소요되는 고분이기에 역사의 흐름과 함께 차츰 단순화 과정과 지역에 맞는 토착화 과정으로 변형되었다.

이제 일본 열도로 떠나보자. 

고대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갈 수 있는 코스는 수 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유효해서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역사통로로 남아 있다. 이제 그 역사의 루트를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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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대마도-이끼섬-큐슈 관광로. 이끼섬의 도리이 원형솟대

비행기를 타면 떴다 내리면 되는 가까운 거리가 일본열도이기에 초기 역사의 이동루트를 답사하는 역사유적지 답사코스엔 별 흥미를 던져주지 못한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대마도를 거치고 이끼 섬(壱岐島)을 거쳐 큐슈로 들어가야 우리 선조들의 역사이동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부산과 대마도는 서로를 볼 수 있는 거리였기에 고대 역사에서도 당연히 밀접한 관계였다. 대마도는 말 그대로 對馬島로 말(馬)을 대(對)했다는 의미이다

신채호 선생은 신지비사(서효사)를 최초의 정사라고 언급하셨는데 단군조선의 실체를 확인하는 최고의 역사서이건만 이를 인정하지 않고 아직도 '단군조선은 신화'라는 명목 하에 곰의 아들 단군이 등장하다가 마지막 단군 준왕(準王)이 위만에게 쫒겨 났다는 한심한 역사 틀만 고수하고 있다. 신지비사는 고려사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학자 김종직, 그리고 조선총독부에서도 단군조선시대의 古詩라고 소개하고 있는 역사적인 자료이다. 이 자료는 다음에 공개할 예정이다.

그런데 아직도 단군과 기준(準王)의 틀을 가지고 고조선의 실체를 연구한다고 붙들고 있으니 단군과 기준 사이가 2천년 이상인데 어떻게 실체를 밝힐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한 조선시대 역사자료도 시민강좌를 통해 곧 공개할 예정이다. 다들  단군조선 47대 역사는 환단고기나 규원사화에만 있는 이야기인줄 착각하고 공격하는 한심한 사람들도 있는데 이를 입증하는 조선시대 실존문헌을 다음에 공개할 것이다.

단군조선 시대는 치화(治化)의 시대이기에 치국에 대한 <홍범구주>나 <참전계경>으로 정치와 백성교화가 실현되었다. 국가운영의 틀인 삼한관경 속에 한반도는 ‘마한’의 영역이었기에 그 마한을 대하는 섬으로 ‘對馬’라 표기하였으며 순수하게 ‘두 섬’이란 의미로 ‘쓰시마’라고도 불렀다. 단군조선 붕괴 후 한반도 남부에 생긴 소국 삼한의 마한과 구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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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선생, 조소앙 선생이 언급한 단군조선 삼한관경 
(출처: 상생출판 환단고기 해제본)

대마도는 현재 한국 일부 주류사학들이 다시 불을 지피고 있고 일본역사학계에서 열심히 부채질 하고 있는 “임나일본부” 임나의 주무대다. 이 임나를 명치유신 때 요시다 쇼인이 중심이 되어 정한론의 이론적 배경으로 주장하였다. ‘대마도 임나’를  ‘한반도 남부의 임나가야’로 왜곡하여 끌어들였다. 이에  조슈번의 인물들은 마침내 그 고토수복의 꿈을 이루었다며 감격해했다. 그들은 조선을 강점하고 ‘식민지 조선’을 실현하고자 하였는데 그래서 그들이 가장 서두른 것이 그들이 만든 “조선사” 편수였다.

 그들이 만든 한국고대사의 핵심이 *“한반도 북쪽은 지나의 영토(기자-위만-한사군), 한반도 남쪽은 일본의 영토(임나일본부)”론 이었다. 이 역사논리는 지금도 한국사의 뼈대가 되고 있다. (*조선사학회 자료, 조선총독부 조선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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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임나)의 실체

아무리 조선총독부 사관을 주장한다 해도 직접 대마도를 답사해 보면 정답을 바로 알 수 있다.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에 기록된 고대 임나의 지명인 계지, 인위, 좌호 등이 그대로 동네이름, 우체국, 버스간판 등에 지금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기록된 임나 10국은 다음 회에 자세히 살펴볼 큐슈지역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대마도를 두 번 정도 답사해 보니 역사 결론이 바로 섰다. 처음 배를 통해 대마도에 내려 버스를 타고 가는데 길 가의 어떤 물건이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대여 버스 정차를 시킨 후 빨리 내려 사진부터 찍었다. 다들 영문을 모르는 눈치다. 혼자 신기해서 카메라 셔터를 연신 막 눌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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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도 길가에 놓여 있는 백제식 디딜방아 

바로 이 기물 때문이었다. 바로 백제식 외딜방아였다. 디딜방아는 두 종류가 있는데 끝이 Y자형이 있고 일자형이 있다. 일자형은 일명 '외딜방아‘라 부르는데 고대 백제문화권에서 사용하였는데 현재는 전라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중국대륙의 백제유적지에 가면 만나는 유물이다.

들뜬 마음으로 버스로 이동하면서 창문 밖을 내다보니 여러 특이한 집이 보였다. 고구려의 원형 창고형태인 부경(桴京)이었다. 그 모습도 대마도에 아직도 그대로 많이 남아 있었다. 거기에 고구려가 있었다

부경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도 등장한다. 『三國志』魏書 卷30 東夷傳 高句麗條에 “國中邑落 暮夜 男女群聚 相就歌戱 無大倉庫 家家自有小倉名之爲桴京

4529_5085_1359.jpg△대마도의 고구려식 창고 부경(桴京). 즉 밑이 떠있다는 의미

본격적으로 주변 해안가를 답사해 보니 대부분이 적석총과 석관묘 고분이었다. 일본 닌도쿠(仁徳天皇) 왕릉 같은 형태의 소형 전방후원묘 초기 고분도 발굴되어 있었다.  고인돌을 조성하기에는 환경적으로 열악한 면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실마리를 찾고자 박물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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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의 무너진 적석총, 석관묘 (대한사랑 학술원 답사 시 사진)

대마도의 고분은 산등성이 쪽으로 돌을 쌓아 올려서 맨 위에 피장자를 묻은 묘와 석관을 만들어 매장한 고분이었다. 이 방식도 당연히 한반도에서 나타나는 고유형태의 고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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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도 박물관의 단군조선 세형동검

박물관을 가보니 대마도 박물관 유적은 단순한 섬 수준의 역사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들어가는 필수코스 이었기에 여기에는 이 곳을 다녀갔던 주인공들이 남긴 역사유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곳에서 발굴된 단군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 모든 유물이 한 자리에 전시되어 있었다.

고대 유물을 잘 모르는 한국 분들은 대부분 그냥 지나친다. 위의 사진 박스 안의 유물은 단군조선 후기 세형동검이다. 그 왼편 유물은 세형동검의 칼 손잡이 아래 부분이다. 즉 단군조선시기에 이미 대마도로 들어왔다는 증거유물이다. 

이 놀라움은 대마도를 거쳐 고대 일기국이었던 이끼 섬을 방문했을 때 더욱 한층 고조 되었다. 이끼 섬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보았고 직접 만들어 집 앞에까지 세워놓은 솟대가 그 원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일본신사 앞에 서있는 ‘신의 영역’을 표시하는 원형모습의 ‘도리이’ 재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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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끼섬 일기국의 솟대와 당시 재현 모습

이어 이끼 섬 박물관을 찾았다. 고대 일기국이 존재했던 곳인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메가톤급 충격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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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국 국왕이 착용한 세형동검

바로 한국식 동검으로 불리는 단군조선 후기 청동검인 “세형동검”을 일기국 국왕이 착용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100% 똑같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일본열도에 사국시대나 되어서 교류를 통해 문화가 전달되었다는 자체가 거짓이지 않는가? 현장에 가서 확인하는 역사는 이렇 듯 좀더 사실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이끼 섬을 거쳐 본 무대인 구주 즉 큐슈로 들어가게 되는데 여기서 시간이 있는 분은 꼭 이 곳을 살펴보시라고 한가지 팁을 더 소개하며 이번 기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겨울연가로 유명한 배용준씨가 일본에서 ‘사마’로 사랑 받았는데 바로 일본에서 높은 존칭의 대명사로 사용하는 “사마”의 원주인공 무령왕이 탄생하신 곳이 이끼섬과 큐슈 사이의 가카라시마(加唐島)라는 작은 섬이다. 사가현 소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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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카라시마의 “무녕왕” 탄신 기념지(사진 출처:동아일보)

백제 25대 왕인 무령왕(武寧王, 462년~523년)은 이름이 “사마(斯麻) 또는 융(隆)”이다. 백제사에 위대한 왕으로 분국인 일본열도에 까지 영향을 미쳐 존칭어로서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 탄신지가 한반도 백제 땅이 아니라 분국인 일본열도(당시 왜 열도)이다. 이는 백제와 일본 고대사의 숨겨진 비밀을 알 수 있는 역사사건이다.

가카라시마를 지나 이제 본격적인 고인돌 문화의 정착지 큐슈로 들어가 보자.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너무 많으나 지면상 이 분량으로 약하고 다음 편에서 일본 열도 본게임 장소인 큐슈지역의 고인돌과 일본 초기 고대사 충격적 실체를 확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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