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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천년사」의 장보고 날조
1. 「전라도 천년사」의 관련 부분
ㅇ 선사·고대 4권 237~277쪽
신라인들이 산동반도 초주 양주를 중심으로 중국 동해안에서 광범위하에게 집단 거주지를 형성하여 살면서, 선박제조 및 수리업·해운업·목탄제조 및 유통업, 칼 제조업, 소금생산업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여 해양무역세력으로서 막강한 경제력과 조직망을 갖추고 동아시아 해상무역을 주도하였다고 함.
ㅇ 선사·고대 4권 241쪽
장보고가 재당 시절 일본과 교역활동을 했으므로 신라와 교섭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신라와 더 적극적으로 교역했을 것이며 장보고는 재당 시절부터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적 무역 거상으로 성장해 있었다고 함.
ㅇ 선사·고대 4권 242~248쪽
청해진 대사는 청해진과 청해진 주변 서남해변 일대를 관할하며, 자치권이 허용되었지만, 청해진 대사라는 직위는 신라왕이 준 신라의 관직이라 하며, 적산법화원은 장보고가 세운 절이라 함.
ㅇ 선사·고대 4권 250~277쪽, 369쪽.
당에 파견된 장보고 무역선의 우두머리를 견대당매물사(매물사, 견당사)라 하였고, 일본에 파견된 무역선의 우두머리를 회역사라 했다고 함.
ㅇ 선사·고대 4권 266쪽
8세기 후반 당에서 시작된 사무역 풍조는 신라와 일본에까지 파급되어, 공무역 위주로 행해지던 동아시아 삼국의 교역체제는 점차 붕괴하고 사무역이 성행했다고 함.
2. 「전라도 천년사」의 무근거성
(1) ‘견당매물사’ 날조
① 『입법구법순례행기』의 원문
廿八日. 大唐天子差入新羅慰問新即位王之使, 州青兵馬使吴子陳· 崔副使· 王判官㝳卅余人登來寺裏相看. 夜頭張寶高遣大唐賣物使崔兵馬司來寺問慰.
(839년 6월) 28일 당나라 천자가 새로 즉위한 왕을 위문하기 위해 신라로 보내는 사신인 州青兵馬使 오자진(吳子陳)과 최부사(崔副使) 그리고 왕판관(王判官) 등 30여 명이 절로 올라왔으므로 만나보았다. 밤에 장보고가 보낸 大唐賣物使 崔兵馬司가 절에 와서 위문하였다.
② 大唐賣物使의 의미
- 원문에 의하면 遣은 장보고가 엔닌에게 보냈다는 의미이고, 遣大唐賣物使란 직책은 없음.
- 최훈의 직책은 大唐賣物使 겸 兵馬司로 당나라의 관직명임.
- 대당매물사는 당의 물건을 파는 당나라의 수출관이란 의미임.
- 최훈은 당나라 치청절도사 지분이 있는 무역선의 선장으로 군사적 권한도 있어 兵馬司도 겸직하는 것임.
③ 「전라도 천년사」는 견당사는 당에, 회역사는 일본에 보낸 무역선의 장이라 하나, 견당사란 직책은 날조이고, 大唐賣物使는 당의 수출관, 廻易使는 순회하며 무역하는 관리란 뜻으로 둘다 당나라의 관직명임
④ 「전라도 천년사」는 장보고가 엔닌에게 보냈다는 의미의 遣을 일부러 오역하여 장보고가 신라 국적자로서 당에 ‘견대당매물사’란 관리를 보내는 것으로 날조하여, 장보고에 관한 모든 사실을 날조하고 나아가 중국 동해안 백제의 실체를 숨기는 기반으로 활용하고 있음.
(2) 하늘에서 떨어진 재당신라인의 해양무역 장악
① 「전라도 천년사」는 재당신라인이 언제 신라에서 당으로 왔는지, 당으로 와서 어떻게 중국 동해안을 중심으로 하는 해양무역세력이 되었는지에 대해선 말하지 않음.
② 소위 강단사학에선 『입법구법순례행기』(엔닌일기)에 나오는 신라방·신라소의 신라인들이 8세기 중엽 신라에서 당나라로 이주한 사람들이라 하지만, 이주의 실체도 불명확하며, 화폐조차 없었던 촌락경제 상태의 신라인들이 단기간에 중국 동해안의 해상무역권을 장악한다거나 중국과 일본간 원양항해노선을 개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 해상무역은 대규모의 인적 물적 자본뿐만 아니라, 원양항해에 대한 지적 자본이 필수적인 사업으로 신라인들이 8세기 중엽에 당나라에 이주해서 반세기도 안 되어 바로 동아시아의 해상무역을 장악했다는 것은 소설임.
③ 위의 이유로 「전라도 천년사」는 소위 강단사학의 8세기 중엽의 신라에서 당으로의 이주인이란 주장을 인용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됨. 그러나 「전라도 천년사」도 아무런 근거 없이 신라인이라 주장하고 있어, 둘 모두 역사가 아닌 소설에 불과함.
④ 「전라도 천년사」는 중국 동해안의 백제 영토에서 동아시아 해상무역을 장악하였던 백제인들이, 백제가 망한 후에도 백제유민으로서 그들의 생업을 지속한 것을 숨기기 위해 이들을 신라인으로 날조하고 있음. 물론 당나라에서 이들을 신라인으로 부른 것은 맞지만, 신라에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신라가 백제를 병합하였기 때문에 신라인이라 부른 것임. 이는 고려시대 때, 송나라에서 백제유민들을 고려인이라 한 것과 같음.
⑤ 엔닌과 함께 왔던 일본 조공사는 839년 신라선(백제유민의 원양항해선)을 용선하여 수리하고 신라인(백제유민) 항해사를 고용하여 초주에서 일본으로 돌아가는데, 이들 백제유민들은 신라 해역을 적경(賊境)이라 부르며 신라 해안에 근접하지 않을까 매우 걱정함. 엔닌도 847년 신라인(백제유민) 김진의 배로 귀국하던 도중 전라도 섬에 기착하게 되는데, 김진과 엔닌 모두 신라 정부에 체포되지 않기 위해 도망가듯이 섬을 떠남. 청해진이 존속하고 있던 시기였음에도 이들이 신라 정부를 두려워 하였다는 것은 재당신라인이 신라인이 아닌 백제유민이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됨.
(3) 장보고 관련 사실의 날조
① 대사는 당나라의 관직명임
ㅇ 당나라는 번진(藩鎭)의 반란을 진압한 후, 819년 지방제도를 정비하면서 상업에 종사하던 중국 동해안 백제의 유민들에게 과세할 목적으로 신라방·신라소를 설치하여 그 책임자를 대사(大使)라 함.
ㅇ 당나라 기본법전인 대당육전(大唐六典)」에 “무릇 모든 군진의 대사와 부사 이상은 모두 겸인(시종)을 거느린다(凡諸軍鎭大使副使皆有廉人)”고 되어 있으며 이들의 임기는 4년(四年一替)이었음.
ㅇ 신라에 대사란 관직명은 없었음
ㅇ 장보고는 이사도 토벌의 공로로 819년 등주 적산포 신라소의 초대 대사로 임명됨. 장보고가 828년에 신라로 가므로 제2대 대사도 역임하였던 것으로 추측됨.
ㅇ 841년 신라가 장보고가 왕권에 위협이 될 것을 우려하여 그를 제거하자 당과 신라는 5년 동안 왕래하지 않다가, 846년 신라가 변명하는 사신을 보내자, 당은 847년에야 6년 전에 즉위한 문성왕을 승인하는 책봉사를 파견함. 이는 장보고가 당의 관리였기 때문임.
② 청해진은 당나라의 조차지
ㅇ 당은 쇄국하고 있던 신라의 시장을 노리고, 신라를 압박하여 청해진을 설치하여 신라의 시장을 개방시키면서 장보고를 청해진 대사로 임명
ㅇ 신라는 청해진 설치 6년 후인 834년에 외래품의 소비를 규제하는데, 이는 청해진 설치로 시작된 무역이 신라 정부의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나타냄. 「전라도 천년사」는 청해진 설치 이전에도 신라에서 사무역이 성행했다고 주장하나 전혀 근거 없는 소설임.
ㅇ 김우징이 청해진으로 도망가도 신라 정부가 그를 체포하지 못하는 것은 청해진이 당의 조차지이기 때문임.
ㅇ 김우징이 청해진에서 신라왕을 자처하며 당에 사신을 파견하자 당이 김우징을 신라왕으로 인정하는 것도 역시 청해진이 당의 조차지이기 때문임.
ㅇ 「전라도 천년사」는 장보고에게 청해진의 자치권이 허용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당의 조차지이기 때문임. 「전라도 천년사」는 청해진 대사가 신라왕이 준 관직이라 하는데, 자치권과 신라의 관직은 모순되므로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불과.
ㅇ 신라는 851년 청해진을 폐쇄하고, 청해진의 주민들을 벽골군으로 옮겼으며, 중사처로 지정하여 당나라 측의 연고권 주장을 봉쇄하고자 하였음.
③ 법화원
ㅇ 「전라도 천년사」는 장보고가 적산 법화원을 건립했다고 주장하나, 신라소가 설치되면서 법화원이 창건되고, 장보고가 신라로 간 후 신라소의 후임 대사들이 법화원을 관리하므로 법화원은 개인 사찰이 아닌 신라소의 공공사찰임.
3. 소결
ㅇ 백제는 한반도 요동반도, 중국동해안 열도를 영토로 하였으며, 환황해는 물론 열도와 동남아까지 무역을 한 해상무역세력이었음. 백제가 망한 후에도 중국 동해안의 백제 유민들은 그들의 활동을 계속 유지하였음. 이는 백제 유민이 동아시아 유일의 해상무역세력이었기 때문임.
ㅇ 「전라도 천년사」는 백제 유민의 활동으로 인해 백제의 참모습이 드러나고, 이로 인해 백제를 야마토왜의 영향력 아래 있는 소국으로 날조한 조선총독부와 강단의 사기행위가 드러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당나라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 백제유민들의 해상무역활동을 당으로 이주한 신라 이주민의 활동으로 날조하고 있음.
ㅇ 장보고는 당나라의 관직인 청해진 대사로 일했으며, 대당매물사 회역사도 당나라의 관직명이며, 청해진은 당의 조차지였고, 교관선은 치청절도사와 당나라 국적인 백제유민들이 공유하는 당나라 선적의 무역선이었으며, 장보고는 당의 힘을 이용하여 중국 동해안 백제유민들의 해상무역 활동을 신라까지 확대하고, 신라의 방해로 위협받고 있었던 당나라와 일본간 항해의 안전을 도모하려 하였던 사람임.
ㅇ 「전라도 천년사」는 오역을 통해 ‘견당사’라는 관직을 날조하고, 대사라는 당의 관직명을 신라의 관직명이라 우기고, 장보고가 자치권은 가졌는데 신라왕의 신하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까지 하면서, 백제의 실상을 숨기고 조선총독부가 창작한 소설 고대사를 지키는 데 혈안이 되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