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8 - 대한사랑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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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논문
고조선의 강역-상고시대 강역에 대한 문제점<역사편>
윤내현, 『정신문화연구』 1984 여름호
정리. 송옥진 기자
고조선 연구에 있어서 우선시되어야 할 것은 요수는 고대 중국의 동북부 지역의 경계를 이루
그 위치와 영역을 밝히는 작업이다. 기존의 역 는 강에 대한 명칭이었고 현재의 난하를 지칭한
사학계는 고조선을 지나치게 좁게 이해해왔고, 다. 『한서』「지리지」 <현도군조>에 편찬자의 주
대부분의 연구가 단군신화에만 집중된 채 위치 석으로 기록된 요수는 그 위치나 흐름 방향으
와 영역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 로 보아 지금의 요하로 『한서』에서 보이는 요수
지 않았다. 특히 대동강 유역설은 문헌의 피상 는 서한 초기까지의 요수와는 다른 강이다. 이
적 해석과 낙랑 유적의 존재를 단순히 연결시킨 는 서한 초부터 말 사이 서한 동북 지역의 영역
결과로 보이며, 실제로 평양성을 고조선의 도읍 이 변화되었기 때문인데, 요수라는 명칭이 난하
으로 본 기록은 후대인 당(唐)대 이후에나 나타 에서 요하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와
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고조선 지역은 신 『삼국유사』 기록에서도 원래 요하는 요수가 아
석기 시대 이래 수천 년간 정착 생활이 이어져 니었음이 확인되는데, 고구려에서는 오열수(烏
왔으며, 이러한 역사적 연속성과 고고학적 증거 列水) 또는 압록수(鴨祿水)로 불렀다는 점에서
를 바탕으로 고조선을 보다 실증적으로 규명해 고대 중국과 한국이 동일한 강을 각기 다른 이
야 한다. 름으로 불러왔음을 알 수 있다.
『사기』에 의하면 서한 초기에 위만이 기자국
〇 고조선의 서방 경계 : 요수, 패수, 열수 으로 망명할 때 국경을 이루던 패수를 건넜으며
중국 옛 문헌에 의하면 고조선의 서쪽 변경 기자국은 본래 난하 서부에 있다가 진(秦)시기,
에 요수(遼水), 패수(浿水), 열수(列水)가 있었다. 중국의 통일세력에 밀려 난하 동부 연안인 고
『전국책(戰國策)』과 『사기』에 따르면 요수는 고 조선의 변방에 밀려 들어온 소국이다. 그러므로
조선의 요동과 연나라 사이 경계를 이루는 강 패수는 기본적으로 서한과 고조선의 국경이었
으로 지금의 요하가 아닌 하북성 동북부의 난 다. 고조선이 서쪽 경계를 이루던 강은 열수(列
하(灤河)로 추정된다. 또한 『여씨춘추』, 『회남 水)라고도 불렸다. 이 열수는 고조선 서쪽 경계
자』, 『설원』‘변물(辨物)’, 『관자』, 『수경주(水經 를 이루었던 강의 명칭이었으므로 요수, 패수와
注)』<복수조(福水條)> 등의 기록을 검토해 보면, 더불어 지금의 난하에 대한 다른 명칭으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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