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9 - 대한사랑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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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사기집해』에 따르면 열수(洌水, 列水)에

            는 습수(濕嗽), 열수(洌水), 산수(汕水)의 세 지류
            가 있다. 고조선 영역으로 추정되는 지역의 강

            중에 이러한 명칭의 세 지류를 가지고 있는 강

            은 난하 뿐이다. 여러 기록으로 볼 때, 고조선의
            서쪽 경계를 이루고 있던 것으로 기록된 요수,

            패수, 열수는 동일한 강에 대한 각각 다른 명칭
            이었는데, 지금의 하북성 동북부에 있는 난하였

            다는 것이다.                                                     윤내현 교수가 밝힌 고조선 후기의 강역도

                                                         말을 의미한다고 여겼지만, 『삼국지』, 『삼국사
            〇 고조선의 요동과 연, 진, 서한의 요동                      기』등에서는 고조선 잔여 세력이 이후까지 존재

              『여씨춘추』 주석에 따르면 요동은 난하 동북                   했음을 보여준다. 『삼국지』「예전(濊傳)」에는 3세
            지역으로, 『전국책』과 『사기』 등에서는 고조선                   기까지 ‘지금의 조선’이라는 표현으로 고조선 잔

            과 연국 모두 요동에 일정 부분 영토를 가지고                    여 세력을 구분하고 있으며 고구려의 남쪽, 예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연(燕)은 동호와 고조선을                  서쪽에 위치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
            침공했으나 실질적 국경 변화는 없었으며 고조                     기』에서는 서기 32년 당시 고구려가 북쪽, 낙랑

            선도 연의 초소를 공격한 기록이 있다. 연, 진,                  국이 남쪽에 있었고 낙랑국은 평양지역에 존재

            서한 시대에는 고조선과 연의 요동 경계에 장성                    했다. 고조선은 연, 진, 서한 시기 난하 동쪽에서
            이 축조되었으며 진 장성의 동단 양평은 난하                     요하 동쪽으로 밀려났고 위만조선 성립 후 요하

            동쪽에 위치하였다. 『사기』와 『한서』기록에 따                   를 국경으로 삼게 되었다. 명도전의 출토 상황

            르면 진, 서한 시기의 요동은 오늘날 난하 하류                   을 보면 청천강 이남에서는 출토되지 않아 고조
            동부 연안까지였고 요동 대부분은 고조선 영역                     선의 세력 범위가 청천강 이북임을 알 수 있다.

            에 속해있었다. 고조선 서쪽 국경은 남부에는                     또한 고구려가 서기 37년 낙랑국을 멸망시키고
            장성이, 북부에는 난하 중상류로 형성되었으며                     광무제가 서기 44년 평양 낙랑 지역을 공격하여

            위만조선 멸망 시대까지 이 서쪽 국경은 크게                     군현을 설치한 기록은 낙랑국이 고조선 남경 이

            변하지 않았다.                                     후 한사군의 기존 영역과는 다른 별도의 대상이
                                                         었음을 시사한다. 고조선의 한반도 내 남쪽 경계

            〇 고조선의 영역 변천 : 동남경계                          는 청천강이었으며 평양 지역의 낙랑 유적은 광무
              기존에는 위만조선의 성립이 곧 고조선의 종                    제 시기의 점령지 유적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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