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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논문
고구려 성의 기원에 대한 일고찰
양시은, 『고구려발해연구』 제47집, 2013.11
글. 송옥진(인하대 교수)
고구려는 건국 초기부터 산 정상부에 돌로 북방 초원 지역을 지배한 흉노 역시 주로 토
쌓은 산성을 중심으로 방어 체계를 세우고, 이 성을 축조했고,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로
후에는 지방 통치와 방어를 함께 수행할 수 있 편년되는 흉노시대 토성 12개가 확인되었으나,
는 중대형 포곡식 산성을 발전시켰다. 이는 중 세부적 연구 자료는 제한적이다. 다른 고대 국
국의 진·한 이후 국가들이 판축공법으로 평지 가들도 상황은 유사하다. 고조선의 왕검성(왕
에 토성을 축조하고 군현제를 운영했던 방식과 험성)은 기록에는 등장하지만, 발굴 증거가 확
크게 다르며 한반도의 다른 고대 국가들인 신 실치 않으며, 부여도 문헌상 목책과 토성이 언
라와 백제도 초기에는 대부분 토성에 의존했던 급될 뿐이다. 『삼국지』「위서(魏書)」에는 진한과
것과 대조적이다. 변한에도 성이 존재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중국 중원에서는 이미 신석기 후기인 용산문 초기 철기시대 유적인 양산패총, 김해패총, 성
화기(기원전 2,500~2,000년경)에 대규모 취락 산패총에서 목책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신라와
방어 성곽이 출현했다. 춘추·전국 시대에는 도 백제의 성 관련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찾을
시화와 전쟁의 확산으로 내성·외곽이 있는 도 수 있는데, 고구려와 지형적 조건이 유사했음
성이 발달했고, 진·한대에 이르러 중앙집권적 에도 불구하고 신라와 백제의 국가 형성기 성
군현제가 자리 잡으며 평지 토성이 표준이 되 곽은 대부분 평지 토성을 중심으로 한 방어 체
었다. 고구려가 건국한 환인과 통화, 신빈 지역 계를 갖추었다. 반면 고구려는 주변국과는 달
에서도 한대(漢代) 토성이 여러 곳 확인되는데 리 국가형성기부터 평지 토성이 아닌 산 정상
예컨대, 신빈 영릉진고성(永陵鎭古城), 통화 적 부에 석축 산성을 축조하고 있어 큰 차이를 보
백송고성(赤栢松古城), 단동 애하첨고성(靉河尖 인다.
古城) 같은 한대 성곽은 고구려가 차후 재사용 문헌 기록에 따르면 주몽은 건국 초부터 성
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구려는 이런 체제를 받 을 쌓아 도읍으로 삼았다. 『광개토왕비』에는
아들이지 않고 산성 중심의 방어를 선택했다. “비류곡 홀본 서쪽 산에 성을 쌓아 도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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