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7 - 대한사랑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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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았다”고 전하고, 『삼국사기』에도 졸본 지역 설명했으나. 시기적으로나 지리적으로 간극이
에서 성곽과 궁실을 세웠다는 내용이 나온다. 있고 구체적 연결 고리가 약하다. 때문에 이를
『위서』 또한 “흘승골성”을 언급한다. 이를 통해 이해하기 위해서 지형과 군사 전략을 결정적
고구려가 건국 단계에서 이미 성곽을 적극 활 요인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고구려가 처음 성
용했음을 알 수 있다. 고고학적으로는 환인·집 립한 환인·압록강 중류 지역은 대부분 산악지
안 일대가 핵심이다. 가장 중요한 유적은 오녀 대로 평지가 거의 없고 농업 생산력도 제한적이
산성인데, 해발 약 800m의 산 정상에 위치하며 었다. 국력이 아직 약했던 초기 고구려는 절벽
절벽을 자연 방어선으로 삼고 접근이 용이한 과 험준한 산세를 그대로 방어선으로 삼아 전
일부 구간만 석벽으로 보강했다. 내부에서 고 력의 열세를 보완하고자 했다. 산 정상은 돌을
구려 전기의 건물지와 심발형 토기, 오수전 등 쉽게 구할 수 있어 석성 축조가 자연스러웠을
이 발견되어 건국 초 활동을 잘 보여준다. 고구 것이며 산성은 적을 지연시키고 보루를 연결
려 건국지로 전해지는 흘승골성과의 관련성이 해 유사시 대응할 수 있는 방어 전략에 적합했
높다. 하고성자 토성은 장방형 평지성으로 고 다. 이후 국력이 커지고 지방 통치가 필요해지
구려 전기 유물이 나오지만, 건국 초기보다는 자 포곡식 중대형 산성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
약간 후대의 것으로 보인다. 흑구산성과 전수 러한 성들은 지형에 따라 토성·토석 혼축·석축
호산성은 절벽과 자연 성벽을 활용하고 필요한 을 혼합하여 효율적으로 축조되었으며 이는 고
부분만 석벽으로 만든 전형적 초기 산정식 방 구려가 환경과 용도에 따라 재료와 기술을 유
어 거점이다. 아직 발굴이 충분하지 않지만, 전 연하게 선택했음을 보여준다. 중국 중원에서
기 고구려 토기가 수습되어 초기 산성임이 유 도 평야 지역은 토성, 내몽골처럼 구릉이 많은
력하다. 또한 고검지산성처럼 산 정상과 골짜 지역은 석성이 주류였다는 점을 떠올리면, 고
기를 포괄하는 포곡식 산성도 등장하는데, 이 구려의 방식도 자연적·합리적 선택으로 이해된
는 방어 중심에서 행정·통치 기능을 갖춘 중대 다. 고구려 성곽의 기원은 단순한 문화 전통의
형 산성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고구 계승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자연환경과 군사적
려 초기 산성들의 공통점은 자연 절벽을 방어 필요가 결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기존의
선으로 삼고 필요한 부분만 돌로 보강하여 노 문화 계통론을 넘어 환경·전략적 요인을 강조
동력과 자원을 절약하였으며 쐐기꼴 돌과 잡석 함으로써 고구려 성곽을 보다 실증적이고 현실
을 혼합하여 쌓는 기술이 자주 쓰였다. 적으로 이해하도록 하며 초기 성곽의 축조 시
이전 연구는 고구려 산성을 청동기 시대 산 기를 규명하고 건국기의 군사 전략과 국방 체
상 취락의 발전형이나 예맥계 석성 전통으로 계를 밝히는 데 중요한 기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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