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회원가입

역사뉴스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역사는 미래다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역사는 미래다

[중앙일보] 입력 2012.10.20 00:16

정진홍
논설위원

# 백 년 전 스물다섯 살 난 망국의 청년이 지금의 러시아 우스리스크 지방에서 발해의 유적을 찾아 나섰다. 산운 장도빈(汕耘 張道斌)이 그였다. 당시 그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망명한 후 ‘권업신문’에 기고하면서 때로 단재 신채호가 와병 중일 때는 주필의 역할을 대행하기도 했다. 그와 단재의 만남은 나라가 망해가던 1908년 즈음 스물한 살이던 산운이 여덟 살 위의 단재를 주필로 모시고 ‘대한매일신보’의 논설위원으로 활약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고 독립혼을 되살리려면 국사, 특히 고대사 연구에 매진해야 한다고 생각한 터였다. 아마 단재의 영향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단재가 고조선과 부여 및 고구려사에 보다 관심 가졌다면, 산운이 좀 더 집중한 것은 발해사였다.

 # 조선 정조 때 북학파 학자였던 유득공이 1784년 『발해고(渤海考)』를 쓴 것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발해가 부여의 풍속을 간직하고 고구려의 옛 영토 위에 세워진 고구려의 후예국이며 신라와 더불어 남북국시대를 이룬 우리 민족의 나라였음을 최초로 천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득공은 직접 발해 땅을 밟아보진 못했다. 발해를 찾아서 나선 것은 그로부터 128년 후에 산운 장도빈이 한 일이었다. 그는 문헌연구에 머물지 않고 발해의 고토를 찾아 직접 현장으로 나섰던 것이다.

 # 꼭 반세기 전 당시 우리 지성계를 움직이던 『사상계』 1962년 4월호에는 ‘지나간 20대들’이란 타이틀 아래 산운의 글 ‘암운 짙은 구한말’이 실렸다. 당시 75세였던 그가 50년 전 자신의 20대를 돌아보며 쓴 글이다. 산운이 죽기 일 년 전에 쓴 이 글을 통해 우리는 그가 발해 땅을 찾아나선 까닭과 개략적인 행적을 추정해볼 수 있다. 산운은 군대가 해산되고 외교권마저 박탈당한 채 경술국치로 치닫던 망국의 궤적을 직시하면서 국사연구에 매진했다. 아울러 그는 도산 안창호가 선창하고 양기탁, 이갑, 이동휘, 박은식, 이동녕, 이회영, 이승훈, 김구 등 애국지사들이 총집결한 신민회에서 활동하는 한편 오성학교 학감으로 미래의 애국자를 키우기 위한 교육에 헌신했다. 하지만 학교가 총독부에 의해 문을 닫게 되자 1912년 망명길에 올랐다. 그가 망명한 곳은 다름아닌 해삼위(海蔘威), 지금의 블라디보스토크였다. 그는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으려면 먼저 우리 본래의 웅혼한 혼과 정신을 일깨워야 한다고 봤다. 그래서 산운은 연해주 일대를 떠돌며 잊혀진 나라, 해동성국 발해를 찾아 나섰던 것이다. 그는 반 토막 난 남국(南國) 신라에 갇히지 않고 역사 속에 잠들어 있던 북국(北國) 발해를 깨웠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백 년 전 연해주의 허허벌판을 홀로 헤매었을 스물다섯 살 청년의 뜨거운 열정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 지난 15일 오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소재 연방극동대학교 한국학대학 내의 장도빈기념관 소강당에서 블라디미르 쿠릴로프 연방 극동대 부총장(연방대 승격 전엔 총장)은 “연해주 지역의 첫 국가는 발해였다”고 언명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몸에는 전율이 일고 눈가엔 이슬이 맺혔다. 독도가 일본 땅일 수 없듯 발해가 중국의 변방사일 수 없는 것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때 우리의 잊혀진 뿌리였던 발해를 찾아 나선 젊은 산운 덕분 아닌가! 기념관을 나서며 옛 러시아 해군의 구식대포와 대포알을 녹여 만들었다는 산운의 흉상 앞에 서서 그를 바라보며 이렇게 되뇌었다. “백 년 전 그가 발해유적을 찾아나선 까닭이 천 년 전 옛 땅에 대한 그리움 때문만은 아니었으리. 그보다도 미래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제시 때문이었으리라!”

 # 천 년 전에도 우리는 하나가 되지 못한 채 남의 신라와 북의 발해로 나뉘어진 남북국시대였다. 그리고 백 년 전엔 아예 망한 나라였다. 하지만 산운 같은 이들이 무너진 나라를 다시 일으킬 꿈을 안고 작지만 의미 있는 역사의 혼불을 되살리려 동분서주했기에 오늘이 있고 내일 또한 열려 있다. 정말이지 역사는 살아있는 미래다!

정진홍 논설위원 

이 글을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이 글을 트위터로 퍼가기 이 글을 카카오스토리로 퍼가기 이 글을 밴드로 퍼가기

역사뉴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공지 [윤창열 이사장]소서노와 백제의 건국 뭉개구름 2024-03-24 2,811
공지 남원을 임나일본부설에서 구한 공로자에 감사패 및 공로패 수여 뭉개구름 2024-03-07 3,931
공지 [취재] 『전라도 천년사』 배포 무기한 연기 뭉개구름 2024-02-17 5,549
공지 2024년 대한학술문화제 공모논문 선정 심사 결과 조광선수지 2024-02-01 5,935
공지 환단고기 북 콘서트 [빛의 바람]편 천만 시청 대한사랑 구독이벤트 당첨 결과 조광선수지 2024-01-24 6,445
공지 [윤창열 대한사랑 이사장] 갑진년(2024) 신년사 뭉개구름 2023-12-30 10,023
공지 김정호 국회의원, 가야사 복원과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 할 것 보은이 2022-07-15 31,129
121 국내 대표신학자 박순경 교수 "환단고기를 꼭 읽어보라" 커발한 2020-10-27 1,570
120 봉오동 독립전쟁 100주년 최운산을 기록하고 기억하다. 대한남아 2020-07-05 1,805
119 박석재 박사의 <하늘의 역사> 17일 첫 방영 바른역사 2020-04-20 1,659
118 참환역사신문 발행인 이지영 총재 영면 바른역사 2020-04-20 1,749
117 [신간] 이찬구 박사의 『새로운 광개토태왕릉비 연구』 바른역사 2020-04-12 1,574
116 유학자 이기동 교수 "『환단고기』는 결코 위서가 아닙니다" 바른역사 2020-04-12 1,781
115 [동아플래시100]‘전설이 아닌 역사’ 민족 시조 ‘단군’을 그려주세요 바른역사 2020-04-12 1,672
114 사마천이 ‘史記’에서 삭제한 단군조선의 진실은? …‘신주사기’ 출간 바른역사 2020-04-12 1,399
113 [시론] 단재 신채호의 '直筆정신' 환생하길 커발한 2020-02-20 1,623
112 일본 극우파 선전장이 된 국립박물관의 가야전시 바른역사 2020-01-31 1,749
111 지난해 11월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 암다바드에서 한·인도 학술대회 개회식 대한남아 2020-01-24 1,556
110 "한국이 멋대로 빼앗아" "반성해야" " 독도 망언" 난무한 일 영토주권전시관 대한남아 2020-01-24 1,658
109 “한국어, 저희가 지켜 드릴게요”…인도·콜롬비아 여성의 ‘한국어 사랑’ admin 2019-12-04 1,525
108 한민족 역사의 중심 종족 admin 2019-12-04 1,680
107 비화가야의 심장이 오늘 1천500년만에 문을 연다 admin 2019-12-04 1,633
EnglishFrenchGermanItalianJapaneseKoreanPortugueseRussianSpanishJavane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