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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칼럼

(역사산책 ) 고구려 제6대 태조대왕 이야기 - ‘태조’라는 칭호는 역사에서 언제 시작되었나?

*이형모 재외동포신문 발행인


‘태조’라는 칭호는 역사에서 언제 시작되었나?

중국 역사에서 왕의 묘호에 ‘조(祖)’를 붙이기 시작한 것은 서한을 세운 유방의 묘호를 ‘고조(高祖)’라고 한 것이 처음이다. 그 이전에는 ‘제(帝)’ 또는 ‘왕(王)’을 사용했고, 중국 대륙을 통일한 진시황이 처음으로 ‘황(皇)’을 사용했다.

서한과 동한 이후 삼국시대에는 모든 왕의 묘호에 ‘제’를 사용했고, 양진시대나, 남북조, 수나라 때까지도 ‘조’가 사용된 예는 없다. 그러다가 당(唐)나라에 와서 ‘당’을 세운 이연에게 ‘고조’라는 묘호를 붙였으며, 이 때부터 묘호에는 ‘조’와 ‘종’의 개념이 분명해진다.

‘태조’가 처음 나타난 것은 '5대' 시기이므로 기원 907년 무렵이다. 5대 중에 후량과 후주는 건국자를 ‘태조’라 칭했고, 후진과 후한은 ‘고조’라 칭했으며, 후당은 당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두 묘호를 피했다. 따라서 중국 역사에서 건국자를 ‘태조’라고만 칭하기 시작한 것은 송나라 때부터이다. 송, 명, 원, 청 등은 건국자를 모두 ‘태조’라고 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고구려에서는 기원 53년에 즉위한 제6대 임금이 ‘태조’이다. 단재 신채호의 견해로는 “태조를 옛 사서에서는 시호(諡號)라 하였으나, 고구려는 시종 시법(諡法)을 쓰지 않았으니, 생시에 그 공업을 예찬하여 ‘태조(太祖) 혹은 국조(國祖)’라고 쓴 존호(尊號)이다.” 다시 말해 고구려의 ‘태조’는 죽은 후에 드린 시호가 아니고 재위 당시에 드린 ‘존호’라는 것이다.

조선 중종 조에 이맥이 편찬한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에서는 태조를 ‘태조무열제’로 적어 시호를 보이고 있다. 시호 여부와 상관없이 태조가 즉위한 것이 기원 53년이고 146년까지 재위했으므로, ‘태조’라는 칭호의 기원이 중국보다 약 700~800년 앞서 고구려에서 시작된 것이다.


고구려 창건 이후 격동기 100년

흔히 태조라는 칭호는 국가를 창건한 임금에게 붙이는 묘호인데, 어째서 고구려는 제6대 임금에게 태조라는 칭호를 드렸을까?

고구려의 창건자는 ‘고추모대왕’이다. 그러므로 제6대 임금인 ‘태조’는 ‘나라를 창건한 임금’은 아니다. 그러나 제7대를 차(次)대왕, 제8대를 신(新)대왕이라고 이름 한 것을 볼 때, 태조대왕의 경우는 단순히 ‘큰 임금’을 넘어 ‘나라를 처음 연 임금’에 버금가는 칭호인 것이다.

제1대 고추모대왕은 어지러운 열국시대를 뚫고 어렵게 국가를 창건해 기틀을 닦기에도 힘겨웠다. 고조선과 대부여의 통일제국 시대가 끝나 수십 개 국가로 나뉘고, 중국의 통일국가와 국경을 마주한 고구려는 침략위협을 직접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제2대 유류왕은 재위 36년 동안 주변국과 전쟁을 피하면서 국력을 키워야했다. 심지어 주변국과의 외교적 마찰로 장남과 차남을 희생시켜야 하는 불운을 감수해야 했다.

유류왕의 3남인 제3대 대무신왕이 즉위할 당시 한나라는 외척 ‘왕망’이 국권을 찬탈해 ‘신나라’를 세웠고 왕망의 통치에 반발하여 주변국의 적대와 내란이 끊이지 않는 혼란기였다. 이러한 기회를 틈타 대무신왕은 재위 26년 동안 과감하게 팽창정책을 추진해 영토를 확장했고, 부여와의 힘겨운 싸움 끝에 승리해 북방의 맹주가 되었다.

제4대 민중왕 재위 4년을 지나고, 제5대 모본왕은 재위 5년의 짧은 치세에도 불구하고 선비, 오환과 손잡고 한나라를 제압해, 매년 2억 7천만 전의 세폐를 한나라로부터 세 나라가 공납받기로 조약을 맺고 휴전했다. 모본왕이 한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교만해져서 폭정으로 인심을 잃고 53년 11월에 부하 장수에게 시해 당하자, 유류왕의 6남 ‘고추가 재사’의 아들 ‘궁’이 7세 나이로 즉위하니 ‘태조대왕’이다.


고구려 제6대 임금에게 ‘태조’ 칭호를 드린 이유는?

태조대왕은 즉위하자 '모후 해씨'가 수렴청정했고, 그 이후 활발하게 국정을 펼쳤다. 고조선과 부여를 참조해 국가제도를 확립하고 ‘신가, 팔치, 발치’ 재상 3인을 두었다. 고조선의 천지화랑을 본받아 신수두 제전의 우승자들로 ‘선배(조의선인)’를 육성해 천하무적의 군사를 만들었다.

태조대왕 즉위 당시 ‘한’의 부강함이 절정에 달하여 ‘반초’가 서아시아 전체를 정복하고, ‘두헌’이 외몽고의 북흉노를 흑해까지 밀어냈다. 아시아 전체의 패자를 자처하는 한나라로서는 고구려에게 세폐를 바치는 굴욕적인 휴전조약을 견딜 수 없었다. 휴전조약을 폐기 선언하고 요동태수를 새로 임명해 요하 동쪽 6개현을 공격하는 등 전쟁을 준비했다. 다시 승부를 가려 고구려의 항복을 받겠다는 것이어서, 고구려와 한나라는 기원 105년부터 121년까지 17년간 국력을 기울여 총력전을 펼쳤다.

태조는 ‘요동 전쟁’ 개전 당시 37세인 왕자 ‘수성’을 사령관으로 세우고 ‘선배’를 중심으로 한 정예병으로 요동의 신창, 후성 등 6개현을 격파한 후, 예, 선비를 끌어들여 해마다 한의 우북평, 어양, 상곡 등지를 침략하자 17년간 한나라의 인력, 가축과 재력 소모가 매우 컸다. 기원 121년 고구려의 내륙 칩입을 우려한 한의 안제는 유주자사 풍환, 현토군수 요광, 요동태수 채풍에게 유주의 병력으로 대고구려 결전을 명령했다.

수성은 태조의 명을 받아 ‘신치’ 총사령이 되어 정예병력 2천 명으로 험지에서 적의 공격군을 막고, 별동대 3천명을 샛길로 보내 요동, 현토의 각군을 불태워 후방 지원을 차단했다. 같은 해 4월에 수성은 다시 선비 병력 8천 명으로 요동의 요대현을 쳤는데, 고구려의 정예병으로 신창에 잠입시켰다가 요동태수 채풍과 군관 1백 명을 몰살하고 요동군을 점령했다. 같은 해 12월에 백제와 ‘예’의 기병 1만을 동원하여 현토, 낙랑군을 점령했다. 이로써 위만조선의 우거가 잃었던 조선의 옛 터전 ‘오열홀’ 전부를 회복했다. 한나라는 패전을 인정하고 ‘매년 세폐 2억7천만 전 조공’을 조건으로 화의를 구걸했다.

중국과의 17년 전쟁에서 태조대왕은 선비와 예, 백제 등 주변국들의 병력까지 동원하는 탁월한 외교 능력을 발휘했고, 재위 93년간 완벽한 국정 장악으로 고구려를 발전시켰다. '신가(국무총리)'와 총사령관을 겸직한 왕자 수성은 '불패의 상승장군'으로 한나라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태조대왕 재위 93년간과 왕자 수성이 ‘차대왕’(146~165)으로 즉위해 재위 19년간까지 부자의 통치 기간인 113년간이 고구려의 제1차 전성시대이고, 고구려는 중국을 제압하고 아시아 동북방의 패권국가가 되었다. 그래서 태조대왕은 생전에 ‘태조(太祖)’로 존호를 받고 국가 창건자에 버금가는 칭호를 얻게 된 것이다.


단재 신채호 ‘조선상고사’ & 박영규 ‘고구려왕조실록’에서 발췌


저작권자 © 재외동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외동포신문(http://www.dongpo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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