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6 - 대한사랑 15호(202503)
P. 66
상재는 실로 절묘하고 기묘한 기예이다,”라고 감탄하였다.
약 200년간 총 12회 파견된 외교 문화 사절단
조선통신사는 조선이 일본에 파견했던 외교사절로 1592년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조선전기 통신사와 조선후기 통신사로 나뉜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조선으로 출병하
지 않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는 사명대사 유정과의 교섭을 통해 조선과의 국
교를 회복하였고, 부산의 범일동에 위치한 <조선통신사 역사관>에서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약 200년간 12차례 파견되었던 조선후기 통신사를 조명하고 있다.
이후 도쿠가와 막부는 조선통신사의 일본방문을 ‘쇼군(将軍) 일대의 의식’으로 매우
중요시하였으며 도쿠가와 막부의 경사나 쇼군의 계승이 있을 때마다 방문하여, 조선
국왕의 국서를 전달하고 쇼군의 답서를 받았다. 제2회 방문은 교토(京都)의 후시미(伏見)
에서, 마지막 제12회 방문은 쓰시마(対馬)까지였으나, 그 외에는 모두 에도까지 왕복하
였고, 제4회부터 제6회까지는 닛코에도 방문하였다.
조선통신사는 정사(正使)・부사(副使)・종사관(從事官)의 삼사(三使) 이하, 화원(畵員)・의원
(醫院)・역관(譯官)・악사(樂師) 등 총 400명에서 500명에 이르는 대사절단이었다. 조선의
수도 한양(漢陽)에서 출발하여 일본의 수도 에도(江戸)까지는 반년 이상이 소요되는 왕복
약 4,500km의 여행을 했다. 긴 여로의 곳곳에서 통신사는 일본의 많은 문인과 필담을
나누고 노래와 술잔을 주고받았다. 조선통신사의 선단(船團)과 행렬은 일본의 민중들로
부터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일본 각 계층의 사람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조선통신사의 여정 ⓒ조선통신사역사관
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