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2 - 대한사랑 15호(20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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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일월오봉도의 산봉우리 등이 암마이봉(687M)과 숫마이봉(680M)이 봉긋하게

            솟아있는 마이산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일월오봉도 산봉우리들의 특징은 꼭대기에서
            부터 아래까지 산 전체가 다 드러나고, 첩첩이 쌓인 바윗돌로 된 짙은 질감의 돌산으로

            나무나 풀이 없다는 것이다. 마이산도 이와 비슷하다. 우뚝 솟은 암·수 마이봉을 주축

            으로 인근 산들을 묘사하면 일월오봉도와 비슷한 구도가 나온다.
              또 국가지질공원인 마이산은 지질학적 특성인 역암 절벽에 벌집처럼 드러난 ‘풍화혈’

            또는 ‘타포니(Taffoni)’라 불리는 구멍들로 덮여있어 나무와 풀이 자라기 어렵고 멀리서
            보면 짙은 돌산으로 보여서 일월오봉도의 산봉우리와 비슷한 질감을 준다.




              또 하나 일월오봉도가 ‘마이산’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조선왕조 창건과 관련
            이 있어서다. 왜냐하면 마이산은 이성계와 관련이 깊은 산이기 때문이다.

              고려 말 이성계가 남원 운봉(황산대첩)에서 왜구를 무찌르고 개경으로 돌아가던 중 마

            이산을 보았는데, 꿈속에서 신인(神人)으로부터 왕조 창업의 신표인 금척(金尺, 금으로 된 잣
            대)을 받았던 산과 너무나 흡사하여 발걸음을 멈췄다. 이성계는 새 나라 건국에 대한 계

            획을 세우고 백일기도를 올렸는데, 왕이 될 계시를 받았고, 그 증표로 한 그루의 나무
            를 심었다. 바로 수령 600년 된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제386호)가 그것이다.

              지금도 마이산에 가보면 태극전(太極殿)의 외벽에 그려진 일월오봉도와 이성계가 꿈에

            본 장면을 그린 ‘몽금척수수도(夢金尺授受圖)’, 그리고 ‘금척’의 복제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러한 이성계의 금척설화에서 유래하여 ‘금척’은 대한제국 시절에는 최고 훈장인 대훈

            위금척대수장(大勳位金尺大綏章)이라는 명칭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것을 소재로 개국공신 정도전은 가사와 악보를 만들었고 국가의례 때는 몽금척이

            라는 춤과 노래로 공연하였다. ‘마이산’이라는 명칭은 태종 이방원이 남행을 하면서 아
            버지 이성계가 금척을 받은 꿈을 기념하고, 또 산의 형상이 말의 귀를 닮았다고 하여

            ‘마이산’으로 지은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마이산은 조선왕조 오백 년

            동안 왕실차원에서 매우 신성시해왔던 산이었다.


              조선의 일월오봉도는 삼라만상을 상징하며 왕의 전유물로써 지존을 상징하는 조선
            시대 왕권의 아이콘(Icon)이었다. 그래서 왕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반드시 설치되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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