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3 - 대한사랑 15호(20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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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새로운 왕이 즉위하면 새로운 일월오봉도 병풍을 만들어 사용하다가 승하하면 같
이 매장하였다. 동시대 전제 왕권 체제였던 중국과 일본에도 없었던 조선만의 독특한
궁중회화로 자리 잡았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보건대, 음양오행은 한민족의 고유사
상의 기층문화 요소로써 작용하여 왔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일월오봉도는 실내·외 궁중 행사에 주로 사용되었으며. 궁중의 주요 연회를 그린 의
궤(儀軌) 등을 보면 왕이 앉았던 빈 의자로 그려진 어좌에는 일월오봉도로 대체하였다.
또 어진(御眞: 왕의 초상화) 봉안 시에도 일월오봉도 병풍을 설치하였다. 지금도 태조 이성
계의 어진을 모신 전북 전주에 있는 ‘경사스러운 터에 지은 전각’이라는 뜻을 지닌 경기
전(慶基殿)에 가보면 1872년(고종 9년)에 청룡포를 입고 있는 이성계 어진과 함께 제작된
일월오봉도를 만나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일월오봉도는 해와 달로 상징되는 천도(天道:
음양)에 순응하고, 지덕(地德:동·서·남·북·중앙)과 인도(人道:五常-仁·義·禮·智·信)의 중심에 있는
임금이 천지의 도와 음양오행의 정신으로써 백성을 다스려 국태민안을 염원하는 조선
왕조만의 독특한 궁중회화였다.
마이산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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