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대한사랑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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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샨 제국이 불교의 발상지인 북인도로부터 박트리아와 타림분지 일대를 지배함으

            로써 인도의 불교가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으로 대거 유입되었던 것도 주목할 만한 점
            이다. 쿠샨 제국은 이런 면에서 불교사와 문명교류사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

              대월지에서 나온 쿠샨 제국의 번영은 그렇게 오래 계속되지 못했다. 3세기 중반부터

            사산 왕조 페르시아 제국이 다시 동쪽으로 세력을 뻗쳐와 결국 쿠샨 왕은 페르시아에
            신속(臣屬)되고 만다. 인도의 영토도 인도의 여러 나라들에 빼앗겼다.



            키다라 훈

              중국기록인   위서  「서역전(西域傳)」에는 대월지국의 왕으로 ‘기다라(寄多羅)’라는 사람
            이 등장하는데, 쿠샨 왕조에 복속해 있던 집단의 우두머리로 보인다. 4세기 말 쿠샨 제

            국이 약화된 틈을 타 독립된 나라를 세우고 힌두쿠시산맥 북쪽과 남쪽을 지배하였다.

              위서   기록에 의하면 그는 “북천축을 침공하여 간다라 이북의 다섯 나라가 모두 그에
            게 복속하였다.” 기다라 왕국은 사산조 페르시아와 싸워 5세기 중반에는 힌두쿠시산맥

            북쪽의 영토를 빼앗겼지만, 산맥 남쪽의 땅은 5세기 말까지 유지하였던 것 같다. 페르

            시아 기록에 의하면 기다라 즉 키다라 왕은 ‘쿠샨샤’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키다라가 쿠샨제국의 계승자로 자처했음을 말해준다.

              서양의 비잔틴인들은 페르시아를 통해 키다라를 알게 되었다. 아틸라와 교섭하기 위

            해 449년 사절단의 일원으로 훈제국의 본영을 방문하였던 그리스 역사가 프리스쿠스
            는 당시 페르시아와 싸웠던 키다라를 ‘키다라 훈’이라 하였다. 프리스쿠스는 키다라를

            훈족에 속한 족속으로 여긴 것이 분명한데 그렇다면 키다라 훈족은 대월지를 계승한
            것이 된다.




            에프탈 훈 제국
              키다라 훈의 나라는 5세기 말 또 다른 유목민 세력인 에프탈에 의해 정복되었다. 이

            에프탈도 훈이라 불렸다. 6세기 비잔틴 역사가 프로코피우스는 페르시아인들이 에프

            탈을 ‘백(白)훈’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다른 훈족 사람들과는 달리 피부가 희었던 모양
            이다. 중국사서   위서  「서역전」에는 에프탈을 ‘엽달(嚈噠)’이라 하면서 대월지에 속하는

            종족 혹은 투르크계인 고차(高車)의 별종이라고 하였다.   위서   기록이 정확한 것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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