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 - 대한사랑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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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릉 염제사(炎帝祠)등이 있고, 남쪽에서 흘러 위 水)에 합류하는 청강하는 강수가 되기는 어려
수(渭水)로 유입되는 청강하(淸姜河)를 강수라 하 울 듯 하다. 그러나 두 곳의 거리가 그리 멀지
여 이곳 사람들은 이곳 신농진 익문향(益門鄕)을 않으니 신농이 섬서성 보계시에서 태어나고 자
신농씨의 탄생지로 굳게 믿고 있다. 랐다는 것은 확실한 듯 하다.
그러나 『수경(水經)』 위수주(渭水注)에서 “기수
(岐水)는 또 동쪽으로 강씨성(姜氏城) 남쪽을 지나 활동한 곳
면서 강수(姜水)가 된다.”고 하였고, 『대청일통 『태백일사』「삼한관경본기」에서 “소전의 아
지(大淸一統志)』에서도 “강씨성은 기산현의 남쪽 들 신농이 백초를 맛보아 약을 만들었고 후에
에 있다”고 하여 지금의 위하(湋河) 그 중에서도 열산(列山)으로 이주하여 한낮에 시장을 열어 물
기산현의 서가하(徐家河) 동쪽의 강을 강수라 했 건을 교역하게 하였는데, 백성이 이를 매우 편
다. 지금의 연구가들은 강씨성을 기산현(岐山縣) 리하게 여겼다.”라고 하였고, 『태백일사』「신시
의 익점(益店), 부풍현(扶風縣)의 신점(新店)일대로 본기」에서는 “신농이 열산(列山)에서 활동하셨
보고 있으니 강수도 당연히 이곳에 위치할 것 으니 열산은 열수(列水)가 흘러 나오는 곳이다.”
이다. 또 신농을 제사 지내던 오산(吳山)의 하치 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열산은 어디인가?
(下畤)가 위수(渭水)의 북쪽에 있고, 후직의 어머 지금의 학자들은 열산을 호북성 수주시(隨州
니 강원(姜嫄)의 친정인 태[邰, 섬서성 무공현(武功縣)] 市) 여산진(厲山鎭)으로 보고 있다. 열산(列山)은
가 강수의 하류에 있었던 것 등을 이유로 위수 열산(烈山) 이라고도 하는데, 산에다가 불을 놓
의 남쪽에 강수가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이로 아 태운다는 뜻으로 신농씨가 농사를 짓기 위
보면 보계시 익문향에서 북쪽으로 흘러 위수(渭 해 산에다가 불을 질러 화전(火田) 경작을 처음
호북성 수주시 여산진 염제신농 제사 모습 호남성 주주시 염릉현의 염제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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