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 - 대한사랑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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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농본초경 약초를 채취하는 신농씨
킨 것이다.(敎耕耘) 신농은 산에 불을 질러 농 다섯째, 시장을 열어 물건을 교환하게 해 준
토를 만들어 곡식과 채소를 재배하여 수렵과 것이다.(興貿易) 『주역』「계사전」에서 “신농씨가
채취를 벗어나 안정된 삶을 살도록 하였다. 한낮이 되면 시장을 만들어서 천하의 백성을
셋째, 온갖 풀을 맛보아 약효를 알아낸 것이 오게 하며 천하의 재화를 모아서 교역하고 돌
다.(嘗百草) 『회남자』 「수무훈(脩務訓)」을 보면 아가게 하여 각각 살 수 있는 방법을 얻게 하였
“신농은 백초를 맛보고 물이 달고 쓴 것을 맛 다.”라고 하였다.
보아 백성들로 하여금 피하고 취할 것을 알게 여섯째, 질그릇 즉, 도기(陶器)를 만든 것이
하였다. 이 때에 하루에 70번 중독이 된 적도 다.(制作陶器) 도기는 흙을 불에 구워서 만든
있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한나라때 만들어 것으로 토기(土器)를 한단계 발전시킨 것이다.
진 최초의 약물학 서적인 『신농본초경』은 신농 『태평어람』에서 “신농씨가 농사를 지으면서 도
으로써 명칭을 삼고 있다. 기를 만들었다(耕而作陶)”라고 하였다.
넷째, 약물뿐만 아니라 의술을 발전시켜 백 일곱째, 실을 짜서 옷을 해 입게 하였다.(創
성들의 질병을 치료한 것이다.(療民疾) 원시시 編織) 편직(編織)은 털이나 삼베 모시 등의 실을
대에 있어 질병과 독충 맹수의 피해는 인간의 짜서 천을 만들어 옷을 해 입는 것으로 『장자』
생존을 위협하는 중요 요소 중의 하나였다. 여 「도척」에서 “신농씨의 시대에 실을 짜서 옷을
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것이다. 해입었다(織而衣)”라고 하였다. 『상군서(商君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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