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 - 대한사랑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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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신시-단군조선 실존을 증명하는 홍산문화영역(좌)과 고조선유적지로 평가되는 요서지역의 하가점 하층 유적 발굴지
(우, 박진호, 「중국 내 하가점하층문화 연구 동향과 문제점」-연구사 검토를 중심으로-, 『한국학연구』 0.59, 2020, 348쪽)
유사』 두 사서 이외에 단군조선인 삼한을 기술 곳 옥수수 밭에 정확히 기자묘가 있다.
한 사서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오지도 않았고 있을 리도 없는 기자의 묘를
『고려사』「지리지(地理志)」<서경 유수관> 조에는,
성인 기자가 고조선의 통치자로 만들어진 조선시 기자묘가 평양성의 북쪽 토산 위에 있다고 기
대 록하였다.
고려 후기 성리학의 도입과 더불어 기자가 고려 충숙왕 12년(1325) 10월에는 평양부에
부각되기 시작했다. 『고려사』 「예지(禮志)」에는 명을 내려 기자의 사당을 세워서 제사하게 했
1102년(고려 숙종 7) 10월에, 나라의 교화가 기
자로부터 비롯했다고 하여 그 묘를 찾아 사당
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자는 예부(禮部)의 건의
가 있었다. 숙종이 허락하여 대대적인 기자묘
찾기 수색작업이 진행된다. 그런데 오지도 않
은 기자묘가 있을 리가 있는가? 『사기』 「송미
자 세가」 주석에는 두예(杜預, 222~285)가 “기자
의 무덤은 양국(梁國) 몽현(蒙縣)에 있다”고 하여
현재 하남성 상구시 북부와 산동(山東)성 조현
(曹縣)이 교차하는 곳으로 기록했는데, 현재 그 산동성 기자묘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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