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 - 대한사랑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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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가 변동되고 명나라, 청나라, 조선 시기에 단군조선을 실제사로 기록한 조선시대 사서들
는 “기자조선 평양 = 고구려 평양 = 고려 서경 조선시대 역사서에는 고조선을 어떻게 기술
(평양) = 조선 평양”이라는 논리 하에 현재의 평 했을지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과연 지금
양 중심으로 한사군의 위치가 바뀐다. 윤두수 처럼 곰과 호랑이의 신화로 기술했을까? 이제
와 이이에 의해 기자조선과 기자학이 탄생하면 본격적으로 사료를 확인하겠지만 조선시대를
서 평양은 확고부동한 기자조선의 도읍지와 위 통틀어 단군의 존재를 곰과 호랑이를 거론하
만과 낙랑군의 평양으로 설정된다. 수백 년이 며 신화를 운운하는 사서는 거의 없다. 기자를
흐른 후 이것이 주변국 중국의 동북공정 핵심 앞세우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표현
논리를 활용될지는 그 당시 그 누구도 짐작하 은 “단군조선(檀君朝鮮)”이란 기술이 대부분이다.
지 못했을 것이다. 서거정이 편찬한 『동국통감(東國通鑑)』, 조정(趙
그러나 기자 중심으로 조선의 역사관이 경 挺)이 편찬한 『동사보유(東史補遺)』, 홍만종의 『동
도(傾倒)되기 시작했어도 그 누구도 단군의 존 국역대총목(東國歷代總目)』 에도 단군조선이라고
재를 쉽게 부정할 수는 없었다. 1397년 명나라 기술하고 있다.
주원장이 조선의 권근(權近)을 앞에 두고 ‘단군’ 안정복은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 동국역대
을 언급하였을 정도로 단군은 중원에서도 널리 전수지도에서 정통조선을 단군으로 표기하였
알려진 존재였다. 주원장은 ‘삼한(三韓)을 차지 고, 영조 시기의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한 조선’이라고 인정도 해 주었다. 는 단군과 팽오 관련 기록이 등장하며 『정조실
『『동국통감』의 단군조선 기술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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