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 - 대한사랑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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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7

            로서 위상이 높아지며 칙령 제218호로 「조선                    4,510권, 문권(文券)·화상(畫像)·편액(扁額) 등 453

            사편수회관제」가 공포되었다. 초기에는 다수                      점을 수집하였다. 이렇게 방대한 사료 수집이
            의 조선인 학자들이 기용되었으나 후기에는 일                     올바른 『조선사』 집필로 드러났다면 동북공정

            본인 중심의 인사들이 대거 기용되었다. 그 이                    도 당하지 않았겠지만, 『조선사편수회 사업개

            유 중 하나는 조선사편수과정에 단군역사를                       요』와 인하대 고조선연구소의 조선사 번역 과
            삭제한 것에 분노한 최남선과 이마니시 류의                      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조선사편찬 사업의 목적

            갈등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편수위원이었던                     은 단군조선건국부정, 평양 낙랑군 설정과 고
            윤용구는 조선사편수회의 조선사에서 단군이                       려국경을 비롯한 한국 강역사를 반도사로 조

            배제된 것에 분노하여 낙향하여 제자인 서계수                     작, 왜곡하기 위한 것이었다.

            와 함께 『조선세가보(朝鮮世家譜)』를 출간하였는
            데, 47대 단군들에 대한 자세한 치적을 기록하                   광복 후 갈수록 강해지는 단군과 고조선 건국 부정

            였다.                                           광복 후 한국 사학계는 조선총독부 식민사
              조선총독부가  진행한  조선사편찬작업은                      학 극복을 외치며 실증주의 사학을 표명하였

            1938년에 6편 체제의 『조선사』(총 35권)로 편                다. 광복 80주년이 흘러 많은 고고학적 성과를

            찬되었는데, 이를 위해 도서 4,950책, 사진                   통해 단군조선에 대한 기술 내용이 더욱 구체































                     (우측부터)①1938년 6월 간행된 조선사편수회 사업개요 표지 ②조선사편수회 위원장과 회장들(모두 당시 정무총감) 윗줄 우
                     측부터 아리오시 주이치, 시모오카 주지, 유아사 구라헤이, 이케가미 시로, 고다마 히데오, 이마이다 기요노리, 오노 로쿠이치
                     로 ③조선사편수회 고문들. 윗줄 우측부터 이완용, 박영효, 권중현, 핫토리 우노키치, 구로이타 가쓰미, 나이토 도라지로, 야마
                     다 사부로, 이윤용, 하야미 히로시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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