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 - 대한사랑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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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통맥바로잡기ㅣ북부여①
글. 윤창열(대전대 한의학과 명예교수)
1.『환단고기』에 위서 프레임을 씌운 은 모두 역사에 실존했던 사람들이다. 안함노
강단사학계 (서기 579~640)는 신라 진평왕 때의 도승으로 각
『환단고기』가 이 땅에 나온 지 어언 100년 훈이 지은 「해동고승전」에 그의 생애가 기록되
이상의 세월이 흘렀고 이것이 대중화된 지도 어 있으며 신라 십성(十聖)의 한 분으로 받들어
이미 40여 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럼에 지는 분이다. 고려 때의 인물로 비정되는 원동
도 불구하고 과거의 중화주의 사관에 의해 쓰 중의 자세한 행적은 전해지지 않지만, 『세조실
여진 사서의 망령에 사로잡히고 일제 식민주의 록』 <3년(서기 1457)조>에 8도 관찰사에게 유시
사관의 굴레를 벗지 못한 강단의 사학자들은 한, 책을 수집하여 올리라는 수거령 속에 「安含
유치한 궤변을 늘어놓으며 『환단고기』가 위서 老元董仲三聖記」라는 말이 나오므로 이 두 사
라는 주장을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있다. 람이 지은 「삼성기」가 조선시대 초기에 세상에
『환단고기』는 계연수가 이전부터 전하여 오 전하여 왔다는 것을 확증할 수가 있다.
던 5종류의 책을 합편한 것이다. 이 책은 우리 이암(서기 1297~1364)은 고려 말의 명신으로
민족의 찬란했던 상고 역사를 밝혀주고 있을 고려사 「열전」 24에 전기가 실려 있다. 「단군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종교와 철학 문화까 세기」에는 그가 강화도의 해운당에서 서문과
지도 밝혀주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인류의 시원 「단군세기」를 썼다고 두 군데서 언급하였는데,
역사와 원형문화까지도 밝혀주고 있는 지보지 목은 이색이 쓴 묘지명에서도 “선원사의 식영
서(至寶之書)이다. 노인과 속세를 떠난 벗으로 삼고 절 안에 집을
계연수는 안함로가 지은 「삼성기」, 원동중이 지어 해운이라 현판을 걸었다.(與禪源息影老人으
지은 「삼성기」, 이암이 지은 「단군세기」, 범장 로 爲方外友하고 築室寺中하야 扁曰海雲이라)”라고 하여
이 지은 「북부여기」, 그리고 이맥이 지은 「태 그가 말년에 강화도의 해운당에 머물렀음이 확
백일사」의 5권의 책을 합본하여 『환단고기』를 인되고 있다.
편찬하였다. 여기에 언급된 다섯 명의 인물들 범장은 1369년 과거에 급제한 후 고려가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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