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 - 대한사랑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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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8

            란을 일으켰다. 다음 해에 백민성 욕살 구물이

            우화충의 목을 베고 모든 장수의 추대를 받아
            장당경에서 44세 단군에 등극하시고 국호를

            ‘대부여’로 바꾸었다. 대부여라는 국호를 쓴 이

            유는 43세 물리단군 때까지 도읍했던 백악산
            아사달의 지명이 부여였기 때문에 수도는 비록

            옮겼지만, 이를 계승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
            다. 즉 대부여는 단군조선의 제3왕조가 된다.

            『성경지』를 인용한 『동사강목』의 내용을 보면
                                                                      북부여의 건국자 해모수 ⓒ김산호 화백
            “부여국은 지금 요령성 개원현 소재지 경내가
            모두 그 땅이다. 그 왕성은 개원현성 서남쪽에

            있는데 요(遼)에서 통주로 고쳤다.”라고 하였다.                  은 太陽之子(태양지자) 天帝之子(천제지자)의 의미
            이를 보면 장당경 아사달이 있었던 개원시에                      가 있다. 해모수가 북부여를 건국한 해는 BCE

            부여가 있었음이 확실해진다.                              239년이다.

                                                          그런데 『삼국유사』에서는 3갑자를 내려 전
            3) 북부여(해씨부여)                                 한의 선제 신작 3년(BCE 59년)이라고 기록하여

              북부여는 단군조선에서 고구려를 이어주는                      북부여의 역사를 미궁에 빠트렸다.

            나라로 북부여가 국호이다. 광개토태왕비문에                       북부여의 역년은 첫째 BCE 239년 건국에서
            “시조 추모왕이 북부여에서 나왔다”라고 하였                     해모수의 혈통이 지속된 해부루가 동부여로 옮

            고 모두루묘지명에서 “추모성왕은 원래 북부                      겨가는 BCE 86년까지 154년으로 볼 수 있고,
            여에서 나왔다”라고 하였으며 『삼국유사』 북                     둘째 고두막한의 동명부여(졸본부여)를 후기 북

            부여조에서도 “도읍을 세워 왕이라 일컫고 국                     부여라 하여 이를 포함하면 고주몽이 북부여의

            호를 북부여라 했다(國號北扶餘)”라고 하였다. 그                  7대 단군으로 등극하는 BCE 58년까지 182년
            런데 한국의 강단사학계는 북부여를 국호로                       으로 볼 수 있으며, 셋째 고주몽이 고구려라는

            인정하지 않고 부여의 북쪽을 가르킨다고 인                      국호를 쓰기 시작하는 BCE 37년까지 연장하

            식하고 있다. 단군조선의 제3왕조인 대부여(요                    면 203년이 된다.
            령성 개원시)의 북쪽에 있어 북부여라 한 것이다.

            북부여의 건국자는 해모수이다. 해는 태양을                      4) 후기북부여(동명부여, 졸본부여)
            뜻하고 광명을 상징한다. 이를 성으로 삼은 것                     흉노를 격파한 한무제는 BCE 108년 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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