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 - 대한사랑 8월호
P. 13

2025. 8

                                            【10개의 부여를 정리한 도표】

              번호       명칭              시기                               내용

                                                   초대 단군이 넷째 아들 부여를 부여후로 봉해준 땅에서 기원. 농안
               1      원시부여         초대 단군 이후
                                                   장춘지역. 최초의 부여로 이후 부여라는 명칭의 기원이 됨

                                                   단군조선의 제3왕조 시대, 장당경아사달(요령성 개원)에 도읍한
                                 44세 구물단군~ 47세     이후 고조선이 끝날 때까지. 부여의 위치가 백악산 아사달
               2      대부여           고열가단군,
                                BCE 425~238 (188년)  지역이므로 비록 수도를 장당경으로 옮기지만 백악산 아사달을
                                                   계승한다는 의미가 있다.

                                해모수가 건국한 해부터       해모수가 건국한 BCE 239년부터 해모수의 혈통이 계승한 BCE
                      북부여       고주몽이7세 단군이 된       86년까지 154년간을 전기북부여라 하고 고두막한이 계승한
               3
                      해씨부여            해까지.         BCE 86년 이후 고주몽이 등극하는 BCE 58년까지 29년간을
                                BCE 239~58 (182년)  후기북부여라 한다

                                  고두막한이 의병을        동명왕 고두막한이 의병을 일으킨 후 졸본에서 즉위하여
                      졸본부여
                                 일으켜 즉위한 BCE       졸본부여라고도 하고 스스로를 동명이라 불러 동명부여라고도
               4      동명부여
                                 108년에서 북부여를       부른다. 후기북부여 시대(BCE 86~58)까지도 이 명칭이 함께
                    (후기북부여)
                                계승한 86년까지(23년)     쓰였다고 본다.
                      동부여                          고두막한의 세력에 밀려 해부루가 제후로 강등되어 가섭원(지금의
                                    BCE 86~CE
               5     가섭원부여                         흑룡강성 통하현)으로 이주한 기원전 86년부터 3세 대소왕이
                                    22년(108년)
                      하부여                          고구려 대무신열제에게 죽은 해(CE 22년)까지.
                                                   대소의 막내 동생이 CE 22년 4월 압록곡에서 해두왕을 죽이고
                      갈사부여
               6                  CE 22~68 (47년)   갈사수(우수리강) 강변에 세운 나라.
                      (북갈사)
                                                   CE 68년 고구려 태조무열제에게 항복.
                                                   북갈사의 3세 도두왕이 항복하자 고구려에서 도두왕에게 우태라는
                      동부여후
               7                 CE 68-410(343년)   직책을 내리고 혼춘을 식읍으로주고 동부여후에 봉해줌. 410년
                      (남갈사)
                                                   광개토태왕의정벌에 의해 멸망된 것으로 추정된다.

                                                   CE 22년 7월 대소의 종제가 고구려에 항복하자 연나부(요령성
                     연나부부여
                                                   개원 서북)에 살게 하고 왕으로 봉해줌. 그 뒤 백랑산(객좌현성
               8      낙씨부여      CE 22~494년 (473년)
                                                   남서쪽)으로 이주하여 중국과 고구려 사이에서 나라를 유지하다가
                      서부여
                                                   494년 고구려에 항복.
                                                   고구려가 동부여후(남갈사)를 멸망 시키자 그 유민들이
                      두막루
                                                   나하(那河)를 건너 건국한 나라이다. 726년 대진국 광종 무황제때
                      대막루
               9                CE 410~726 (317년)  멸망하였다. 위치는 눈강 동쪽 송화강 북쪽이다. 자신들을 스스로
                      대막로
                                                   북부여의 후예라고 말하였다. 410년은 광개토태왕비문에서 태왕이
                      달말루
                                                   동부여를 멸망시킨 해로 기술되어 있다.

                                                   백제 성왕이 538년 공주에서 부여로 천도하면서 일시적으로 이
               10     남부여          CE 538~554
                                                   명칭을 씀. 그의 사후 명칭이 없어졌다고 사료됨.

                                                                                              13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