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 - 대한사랑 8월호
P. 16
국통맥바로잡기 | 북부여②
글. 박유태 기자
해방된 지 8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평나를 침공하여 우거를 멸하고 사군을 설치하려
일제강점기 때 주입된 식민사관의 그늘 아래 군대를 크게 일으켜 사방으로 쳐들어왔다. 이에
있다. 식민사관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한사 고두막한이 구국의 의병을 일으켜 이르는 곳마다
군 한반도설’이다. 강단 주류사학계는 기원전 한나라 도적을 격파하였다. 유민들이 사방에서
108년, 한나라가 한반도 북부에 낙랑·임둔·진 호응하니 군세가 크게 떨쳤다.
번·현도 네 개의 군(郡)을 설치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은 오래전부터 있어 영준하고 호방한 성품에 탁월한 전술가였던
왔다. 실제 한사군은 고대의 요동 지역에 설치 그는 불길처럼 일어나는 한나라의 침략에 분개
되었으며, 그마저도 설치 여부조차 불분명하 하여, 민족의 구원자로 나섰다. 그의 항전 기록
다. 이는 곧, 한나라가 한반도에 군현을 설치하 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려다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실패했다는 역사적
가능성을 드러낸다. 을해년 황제는 스스로 장수가 되어 격문을 전하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고두막한이다. 니 이르는 곳마다 무적이었다. 한 달도 되지 않아
그는 『환단고기』의 「삼성기」와 「북부여기」에 군사는 5천 명에 이르렀고, 싸울 때마다 한나라
등장하는 실존하는 구국의 영웅으로, 한나라 도적이 멀리서 보기만 해도 스스로 무너졌다.
에 맞서 의병을 일으키고, 한무제의 군대를 물
리친 인물이다. 그는 이후 졸본부여를 건국한 결국 그는 요하를 건너 서안평까지 진군하였
왕이 되고 북부여의 5대 단군으로 등극한다. 고, 여러 차례 한나라 군과 전투를 벌여 승리했
『환단고기』 「북부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 다. 그의 승전은 단순한 방어가 아닌 적극적인
록이 전한다. 반격이었으며, 이 전쟁을 통해 그는 북부여를
재건하고 도성에 입성하여 민심을 수습하였다.
계유(癸酉, BCE 108)년, 한나라 유철(유철=한무제)이 이후 한나라의 도적을 수차례 격파했고, 병사
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