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 - 대한사랑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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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여를 제외한 9개 부여의 위치 및 역년
아상군과 흑수말갈군 사이에서 두막루국은 세 서 “개원 11년(723년) 달말루 달구 2부의 수령
력을 잃고 국토가 두 나라에 양분된 것으로 보 이 조공을 바쳤다. 달말루는 스스로 북부여의
인다. 두막루국은 410년에서 726년까지 317 후예라고 말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망시
년간 존속하였다. 키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살았다. 혹
타루하라고도 부르니 동북쪽으로 흘러 흑수로
10) 남부여 들어간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위서』 「두막루
백제의 26대 성왕(523~554)은 16년(538년) 봄 전」의 내용이 『삼국지』 「부여전」을 그대로 옮
에 도읍을 웅진에서 사비로 옮기고 국호를 남 겨놓고 있고 이 가운데 육축으로 관직의 이름
부여라고 했다. 남부여라는 국호는 천도 후 사 (우가, 마가, 구가, 저가, 계가, 양가)을 삼았다고 하였
용되다가 성왕 사후 다시 백제로 복구된 것으 으니 두막루국이 북부여의 후예인 것은 의심의
로 보인다.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두막루국은 언제 건국되어 몇 년
5. 두막루국 동안 지속되었는가. 『위서』 「물길전」을 보면
부여계통의 나라로써 두막루국이 있다. 두막 “물길이 항상 두막루 등의 나라를 경시하였다”
루국은 대막루(大莫婁), 대막로(大莫盧), 달말루(達 라고 하였고 “9년(북위 태화 9년으로 485년이다)에
末婁)라고도 부른다. 『위서』 「두막루전」에서 “두 다시 사신 후니지를 보내 조회하고 방물을 바
막루국은 물길국 북쪽 천리에 있는데 옛적의 쳤고 다음해(486년)에 다시 공물을 바쳤다. 그리
북부여이다” 라고 하였고 『신당서』 「유귀전」에 고 물길국 근처에 대막로국....우진후국 등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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