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 - 대한사랑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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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8
글. 박유태 기자
들과 함께 대승을 거두었다. 이때 진(辰)나라는 개마대산을 고(固)로 삼고, 엄록
안함로의 「삼성기 상」에도 동일한 사건이 기 대수를 성(城)으로 삼아 한나라와 겨루어 진번(眞)
록되어 있다. 과 임둔을 설치하려는 의지를 분쇄하고 깨뜨렸
다.
한무제가 군대를 일으켜 우거를 멸하자, 서압록
사람 고두막한이 의병을 일으켜 한나라 도적을 여기서 ‘진(辰)’나라는 당시 북부여를 가리키
몰아내었다. 북부여 4세 고우루 단군 때의 일이 며, 이는 고두막한이 활약하던 시기와 지리적
다. 고두막한은 부여의 옛 도읍을 점령하고 나라 정황이 정확히 부합한다. 즉, 북부여가 한나라
이름을 ‘동명’이라 칭하였다. 이는 신라의 옛 땅이 에 맞서 진번·임둔 설치를 물리친 사건은 고두
다. 막한의 항전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유사 기록
이다.
이러한 고두막한의 활약은 단순한 전투의 또한 『후한서』 「동이열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넘어서, 실제 한사군 설치를 저지한 역 내용이 등장한다.
사적 사건으로 추정할 수 있는 다양한 문헌에
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우선, 『거란고전』 한무제가 조선을 멸망시키고 옥저 땅에 현토군을
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내용을 전한다. 설치했으나, 뒤에 이맥의 침략을 받아 군을 서북
으로 이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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