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 - 대한사랑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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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이 전쟁에서 진정으로 승리하였다면,                      오늘날 중국은 동북공정을 강화하여 고구려

            수군과 육군의 최고 지휘관을 극형에 처할 이                     와 부여를 중국 역사에 편입하려는 시도를 계
            유가 없다. 더욱이 이 전쟁의 결과로 설치된 것                   속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바로 ‘한사군 한반

            은 ‘한사군’이 아니라, 위만 정권 붕괴에 협조                   도설’이 있다. 이를 정면으로 부정할 수 있는

            한 자들에게 제후 작위를 준 ‘조선 5군’이었다.                  강력한 역사적 근거가 바로 고두막한의 존재
            이들 5군은 식민지적 성격이 아니라 자치령에                     다.

            가까운 형태였으며, 그 위치 또한 한반도가 아                     그는 단지 신화 속 무장이 아니라, 사군 설

            니었다.                                         치를 막고 조선 땅의 주권을 끝까지 수호한 의
              결국 우리가 배운 ‘한사군 한반도설’은 식민                   병장이었고 후일 북부여의 단군이었다. 우리가

            사관의 산물이며, 이러한 가설을 반박할 수 있                    그의 이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
            는 실체가 바로 고두막한이다. 그는 사료의 언                    다.

            저리에 존재하며, 지금껏 조명되지 못한 채 역                     우리는 이제 고두막한을 기억해야 한다.

            사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환단고기』와 중국                      그는 식민 사관을 넘어서는 진정한 구국의
            정사 기록의 교차 검토를 통해 우리는 고두막                     영웅이며, 잊혀진 북부여의 천자이자 한민족

            한이 실존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신사의 거대한 기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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