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8 - 대한사랑 9월호
P. 58

선덕여왕 재위 시기 대국통을 지낸 승려로 당에 유학하여 명성을 떨쳤다. 불교
            교단의 규율을 제정하고 통도사를 창건했고, 황룡사 주지를 역임하였다.




                   해동 화엄종의 개조로 의상 문하에서 10대덕(오진, 지통, 표훈, 진정, 진장, 도융, 양원,
            상원, 능인, 의적)이 배출되는 등 신라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원래 화랑인 호세랑의 낭도였는데, 일이 잘못되어 자취를 감추고 은거하게 되

            었다. 600년에 안함과 함께 수나라로 가고자 했으나, 풍랑을 만나 돌아왔다. 정토신앙

            의 선구자가 되었다.



                   안홍이라고도 한다. 『해동고승전』에 의하면 영민하고 도량이 넓었으며, 일찍부
            터 뜻을 나라 밖에 두었다 한다. 601년 중국에 유학을 떠나 처음으로 서역의 승려들과

            함께 신라로 돌아왔다. 황룡사에 머물며 『전단향화성광묘녀경』을 번역했다고 전해져

            신라 밀교와 관련 있는 인물로 여겨진다. 그가 쓴  『동도성립기』에 황룡사 9층 목탑에
            대한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탑의 건립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판단되며, 우리 상

            고 역사의 비밀이 담긴 『삼성기』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법흥왕의 개혁정책 일환이었던 불교 공인에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준 인

            물이다. 전불터 중 1곳이었던 천경림에 흥륜사 건립을 강행한 책임을 물어 목이 잘렸는

            데, 이 일로 법흥왕의 위엄이 서면서 불교를 신라에 정착시킬 수 있게 하였다.



                       신라에 불교를 전래시킨 인물이다. 『삼국유사』「아도」편에서 아도의 어머니
            인 고도령은 7개의 전불(前佛)터에서 법을 전하면, 불교의 초석을 이룰 것이라고 하였다

            한다. 전불터라 함은 석가 이전의 불법이 행해진 곳으로 소도제천터를 말한다.













            58
   53   54   55   56   57   58   59   60   61   62   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