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 - 대한사랑 9월호
P. 7

2025. 9
























                                                국립경주박물관의 <역사연대표> l 내물왕 이전의 400년 동안 기록이 단 하나 있다.









            역사가 한 뼘 정도의 길이라면 그 다음 이어지                    소우키치(津田左右吉)다. 그는 1919년 다음과 같

            는 내물왕 이후의 400년의 역사는 6배가 되는                   이 주장했다.
            길이로 내용이 가득 차 있다. 이것이 400년 역

            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삼국사기』에는 4세기 후반. 5세기에 걸쳐 우리

                                                          나라(일본)가 한반도 남부에 도달했다’라는 명백
              하지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모두 박·                   한 사건이 나타나지 않는다” “『삼국사기』 「신라

            석·김 3성이 초기 신라를 차례로 다스렸고, 이                    본기」 상대에 보이는 외국관계나 영토에 관한 기

            들 사이에도 일정한 권력 교체의 논리가 있었                      사는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이해된다.
            음을 전한다. 고고학적 유물, 고대 중국 사서와                    -쓰다 소우키치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대하여, 『고사기』

            의 교차 검증, 그리고 천문학적 사건 기록에 대                    및 『일본서기』 연구 1919
            한 현대 과학의 분석 역시 이러한 초기 신라사

            의 신빙성을 높여 준다.                                 즉, ‘임나일본부설’—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허황된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왜곡의 근원, 일본 식민사학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은 반드시 거짓이어야

              내물왕 이전을 ‘신화’로, ‘전설’로 취급한 중                 만 했다.
            요 인물 중 하나는 바로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이는 쓰다 소우키치 한 사람의 주장이 아니



                                                                                               7
   2   3   4   5   6   7   8   9   10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