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 - 대한사랑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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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의 <역사연대표> l 내물왕 이전의 400년 동안 기록이 단 하나 있다.
역사가 한 뼘 정도의 길이라면 그 다음 이어지 소우키치(津田左右吉)다. 그는 1919년 다음과 같
는 내물왕 이후의 400년의 역사는 6배가 되는 이 주장했다.
길이로 내용이 가득 차 있다. 이것이 400년 역
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삼국사기』에는 4세기 후반. 5세기에 걸쳐 우리
나라(일본)가 한반도 남부에 도달했다’라는 명백
하지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모두 박· 한 사건이 나타나지 않는다” “『삼국사기』 「신라
석·김 3성이 초기 신라를 차례로 다스렸고, 이 본기」 상대에 보이는 외국관계나 영토에 관한 기
들 사이에도 일정한 권력 교체의 논리가 있었 사는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이해된다.
음을 전한다. 고고학적 유물, 고대 중국 사서와 -쓰다 소우키치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대하여, 『고사기』
의 교차 검증, 그리고 천문학적 사건 기록에 대 및 『일본서기』 연구 1919
한 현대 과학의 분석 역시 이러한 초기 신라사
의 신빙성을 높여 준다. 즉, ‘임나일본부설’—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허황된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왜곡의 근원, 일본 식민사학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은 반드시 거짓이어야
내물왕 이전을 ‘신화’로, ‘전설’로 취급한 중 만 했다.
요 인물 중 하나는 바로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이는 쓰다 소우키치 한 사람의 주장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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