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 - 대한사랑 9월호
P. 10
국립경주박물관 <역사연대표> 앞에서 설명하는 필자
고구려·백제·신라 왕위 계승의 연속성 왜 학계와 박물관은 침묵하는가
삼국의 초기 왕위 계승 체계를 보면, 내물 이미 국내에는 수많은 고고학적 발굴, 문헌
왕·고이왕·태조왕 이전부터 분명한 부자 상속 적 교차 검토, 천문학적 연구를 통해 『삼국사
또는 혈통 중심의 왕위 승계가 존재했음을 알 기』 초기 기록의 신빙성이 뒷받침되고 있다. 그
수 있다. 러나 학계는 여전히 ‘태고내’-태조왕·고이왕·
신라만 보더라도, 1대 박혁거세, 2대 남해는 내물왕의 앞 자를 따서 외우는 암기법-을 삼국
그의 아들이고 3대 유리는 남해의 아들이다. 4 의 출발점으로 보는 식민사학 프레임을 유지하
대 탈해는 외래계 왕통으로, 혁거세의 사위다. 고 있다.
이후 파사·지마·일성 등은 모두 이전 왕과 직간 더 충격적인 것은 이 논리가 단지 교과서에
접적인 혈연 관계이다. 머무르지 않고, 국립박물관과 공공 전시 공간
비록 중간에 외척 또는 국인 추대에 의해 왕 에서조차 ‘사실’처럼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위가 교체되었으나, 이는 조선조 이씨 왕조의 경주박물관에 전시된 신라 연대표는 내물왕 이
예에서 보듯 특수한 사정에 따른 정권 유지 방 전 400년을 공백으로 비워두고 있다.
식의 하나일 뿐, 결코 ‘왕위 세습이 없었다’는 이런 상태로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신라의 건
증거가 아니다. 국사와 그 뿌리를 온전히 가르칠 수 없다.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