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 - 대한사랑 9월호
P. 15

2025. 9

            신라 초기 왕계의 하나였던 석씨(昔氏), 지금은?                   나라 왕이 여국(女國) 왕의 딸을 맞아 아내로 삼았

              표1을 보면 특이한 점이 발견된다. 서라벌의                    는데, 임신한 지 7년 만에 큰 알을 낳았다. 왕이
            건국과 더불어 박씨와 석씨가 번갈아 통치하다                      말하기를, “사람이 알을 낳은 것은 상서롭지 않

            가 김씨 내물왕 이후 석씨 왕은 등장하지 않는                     다. 마땅히 버려야겠다.”라고 하니, 그 여자가 차

            다. 이 문제에 대해 그동안 어느 학자들도 관심                    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비단으로 알을 싸서 보물
            있게 살펴보지 않았다.                                  과 더불어 궤짝에 넣어 바다에 띄워 가는 대로 가

              『삼국사기』에는 석씨의 시조 탈해가 62세로                    게 하였다. 처음에 금관국 해변에 닿았는데, 금관

            유리이사금에 이어 왕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                      국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 취하지 않았다. 다시
            으며 그는 왜의 동북 1천 리에 있는 다파나국                     진한(辰韓)의 아진포구에 이르니, 바로 시조 혁거

            (多婆那國) 출신으로 기록하고 있다. 왜(倭)를 중                  세 재위 39년(BCE 19)의 일이었다.
            심으로 그 위치를 기록했다는 것은 다파나국이                      (脫解尼師今立一云吐解.. 時年六十二. 姓昔, 妃

            한반도 내에 있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阿孝夫人. 脫解夲多婆那國所生也. 其國在倭國

                                                          東北一千里. 初其國王娶女國王女爲妻, 有娠七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이 왕이 되었다. 일설에는                  年, 乃生大卵. 王曰, “人而生卵, 不祥也. 冝弃

              토해(吐解)라고도 한다. 이때 나이가 62세였다. 왕               之.” 其女不忍, 以帛裹卵并寳物, 置於櫝中,
              의 성은 석씨로, 왕비는 아효(阿孝) 부인이다. 탈해               浮於海, 任其所徃. 初至金官國海邊, 金官人怪

              는 본래 다파나국(多婆那國)에서 태어났다. 그 나라                之不取. 又至辰韓 阿珍浦口, 是始祖赫居世在位

              는 왜국(倭國)의 동북 1,000리에 있다. 처음에 그              三十九年也.)   - 『삼국사기』 「신라본기」 <탈해 이사금>


























             「조선팔도고금총람도」(작자미상)에서 다파나국이 한             석탈해가 당시 항해술에서 이용할 수 있는 해류의 흐름을 살펴 본 것이다.
             반도 밖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15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