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 - 대한사랑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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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요동과 한반도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위를 다툼은 진실로 어렵습니다.” 하고 곧 왕에게
성장하는 시기로 주변 소국들을 병합해 가는 절을 하고 하직하고 나가서...
과정이었다. 해류의 흐름을 이용하여 한반도 (解还夲身王亦復然 解乃伏膺曰 僕也適於角術
남부에서 왜 열도 사이를 왕래하는 시기로 가 之場鷹之鷲 雀之於鸇獲免焉 此盖聖人惡殺之
야가 선두 주자로 열도 개척을 하며 그 뒤를 이 仁而然乎 僕之與王爭位良難 便拜辝而出)
어 백제와 고구려, 신라의 세력들이 열도로 넘 - 『삼국유사』 「가락국기」
어가 소국을 만드는 시기인데 대부분 대마도
와 구주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기록에는 배 나는 본래 대장장이였는데 얼마 전 이웃 고을에
를 타고 금관국을 거쳐 진한(辰韓)의 아진포구 간 사이에 그 집을 다른 사람이 빼앗아 살고 있으
에 도착했다고 하니 당시 항해술로 본다면 석 니 청컨대 땅을 파서 조사하게 해 주십시오.
탈해는 쓰시마 해류를 이용하여 금관국 바다 (我夲冶匠乍岀隣郷而人取居之 請堀地檢看)
를 거쳐 서라벌에 도착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 「기이」 <탈해왕>
『삼국유사』에는 그가 가야의 수로왕과 도술
논쟁을 했는데, 결국 수로왕에게 패했고 본인
이 본래 대장장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당시의 하이테크(high tech) 최첨단 기
술인 청동기나 철기를 다루는 기술자였음을 알
수 있고 김수로왕 시기의 가야 기술에는 미치
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이런 배경
속에서 유리왕을 이어 신라의 4대 왕이 되었 월성석씨
본관지: 경북 월성
다. 인구 : 1,536
시조 : 석탈해
탈해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자 왕도 역시 전 모
경주석씨
양이 되었다. 탈해가 이에 엎드려 항복하고 말하 본관지: 경북 경주
인구 : 8,740
기를 “내가 술법을 겨루는 곳에서 매가 독수리에 시조 : 진경
게, 참새가 새매에게 잡히기를 면하였는데, 이는
대개 성인(聖人)이 죽이기를 미워하는 어진 마음
을 가져서 그러한 것입니다. 내가 왕과 더불어 왕 석탈해왕 후손인 월성 석씨와 경주 석씨 인구(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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