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 - 대한사랑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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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정확히 밝히지 않고 관향(本)으로 답을 하 하였는데, 문장이 세련되고 뜻이 깊었다. 왕이 더
였다. 이 점을 본다면 당시 석씨들의 살아 남기 욱 그를 기특하게 여겨 이름을 부르지 않고 임생
위한 처세가 얼마나 처절했는지 알 수 있다. (任生)이라고만 말하였다.
(使製迴謝唐皇帝詔書表, 文工而意盡. 王益竒
왕이 놀라 기뻐하더니, 서로의 만남이 늦은 것을 之, 不稱名, 言任生而已.) - 『삼국사기』 「강수열전」
한탄하며 그의 성명을 물었다. [강수가] 대답하
길, “신(臣)의 본(本)은 임나가량(任那加良)인이며, 가야가 임나라는 근거로 활용된 강수
이름은 우두(牛頭)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 그런데 사학계에서는 ‘임나는 가야’라는 논
길, “경(卿)의 두골을 보니 강수선생(強首先生)이라 리를 내세우기 위해 강수는 가야의 후손이기
고 부를 만하다.”라고 하였다. 에 임나가량인 혹은 무열왕이 ‘임생(任生)’이라
(王驚喜, 恨相見之晩. 問其姓名, 對曰, “臣夲任 고 불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급기
那加良人, 名字牛頭.” 王曰, “見卿頭骨, 可稱強 야 강수 아버지를 ‘석체(昔諦)’라고 기록해 놓았
首先生.”) - 『삼국사기』 「강수열전」 음에도 불구하고 강수의 성을 임씨(任氏)나 성이
알려져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해프닝까지 사학
한자 문장 해석은 글자의 의미를 명확히 파 계에서 벌어졌다.
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대개 이름을 말
하면 성명을 같이 이야기 하지만, 한자에서는 강수는 중원경 사량사람이다. 아버지는 석체(昔
성(姓)과 명(名)은 구분된다. 태종무열왕은 강수 諦) 나마(奈麻)였다.
에게 틀림없이 성과 명을 물었는데, 강수는 본 (強首, 中原京 沙梁人也. 父昔諦奈麻.)
(本)과 명(名)으로 답을 했다. 자신의 본은 임나 - 『삼국사기』 「강수열전」
가량이라는 것이다. 아마 석씨라고 직접적으로
밝히기에는 어려운 시기였으리라 생각된다. 태
종무열왕은 이런 강수의 사정을 이해하는지 그
의 본명인 ‘우두(牛頭, 소대가리)’ 대신에 ‘강수 선
생’으로 부르게 해서 놀림감이 되지 않게 해 주
었으며 어떤 때는 너무 문장을 잘 지어서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임생(任生)’이라고 불렀다.
당 황제의 조서에 감사하는 회답의 표문을 짓게
오랜 추적 끝에 계보와 후손을 찾아 『대동보』에 기록된 석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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