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 - 대한사랑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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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씨가 신라의 왕계를 박씨와 함께 서로 번

            갈아 이어가는 과정에서 새롭게 출현한 김씨는
            신라왕계 구도의 재편을 불러온다. 김알지의

            등장과 후손 미추왕의 13대 왕 등극은 이러한

            신호탄이었다. 14대 유례왕에서 16대 홀해왕
            까지 석씨 왕권을 마지막으로 석씨는 신라왕계

            에서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이어
            서 등장한 김씨왕계는 17대 내물왕에서 52대

            효공왕까지 550년간 신라의 통치 세력이 된다.

            근 천년 역사의 신라사 반 이상을 차지한 것이
            다. 하지만 영원한 왕조는 없다. 고구려, 백제,

            가야를 통합한 거대 영토를 차지했던 신라는
            김씨 왕조를 거치면서 최종적으로는 현 경주지

            역만을 남기고 주변 지역은 반란 세력과 고려

            의 등장으로 대부분의 영토를 상실한다. 이 과
            정에 왕권은 다시 박씨로 바뀌어 15년을 지탱                                              신라 대문장가 석강수

            하다가 마지막 김씨 왕권인 경순왕을 마지막

            으로 역사에서 사라졌다.                                린 석씨는 4세기 초 왕권경쟁에서 김씨족에게
                                                         밀리면서 멸문지화를 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탈해왕의 후손으로 밝혀진 월성 석씨 석강수                      살기 위해 산지사방(散之四方)으로 흩어져 성(姓)

              석탈해왕의 후손을 월성(月城) 석씨, 경주 석                  도 철저히 숨기고 살아 무성무적(無姓無籍)이 되
            씨라고 칭하고 있는데, 2015년 기준으로 인구                   었다고 한다. 이를 증명하듯 첫 족보도 1860년

            가 10,276명(월성 석씨 1,536명, 경주 석씨 8,740)으        에 발간했을 정도다. 아직도 전국에 흩어져 있

            로 알려져 있다. 신라왕계인 밀양 박씨나 경주                    는 많은 석씨들이 족보에 누락되어 있다고 한
            김씨와는 너무나 확연히 비교되는 작은 수치의                     다.

            희귀성(姓)에 속한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할까?                   이러한 배경을 알 수 있는 기록이 등장하는
            박병식의 『석씨왕족의 600년 비사(秘史)』에는                   데, 신라 태종무열왕(김춘추) 시기 최고의 문장

            이에 관한 역사가 기술되어 있다. 석탈해 이후                    가 강수(强首)에 관한 기록에서다. 태종무열왕이

            173년간 8명의 왕을 배출하면서 신라를 다스                    그를 칭찬하며 성(姓)과 명(名)을 물었는데,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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