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 - 대한사랑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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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惠宿)·안함(安含)·의상(義湘)·표훈(表訓)·사파(蛇巴)· 머물며 『전단향화성광묘녀경』을 번역하고, 참
원효(元曉)·혜공(惠空)·자장(慈藏)이다. 이 열 명의 서(讖書) 한 권을 지었다고 한다. 그 후 62세(선덕
인물 중 아도와 염촉, 표훈을 제외하면 모두 신 여왕 9년, 640년)에 입적한 인물이다.
라 중고기에 활동했던 고승들이다. 『삼국유사』 『삼국유사』에도 안함(安含)에 관한 기록이 있
「흥법」편 ‘동경 흥륜사 금당 십성(東京興輪寺金堂 는데, 「탑상(塔像)」 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
十聖)’조를 보면 이들은 신라 최초의 사원이며 이 나온다.
법흥왕(23대, 재위 514~540년)의 원찰이었던 흥륜
사에 이소(泥塑: 진흙으로 빚어 만든 인형)의 형태로 해동의 명현 안홍(安弘)이 지은 『동도성립기』에
봉안되어 있었다고 한다. 는 이런 말이 있다. “신라 제 27대에는 여자가
임금이 되니, 비록 올바른 도리는 있어도 위엄
안함(安含)과 표훈(表訓) 이 없어서 구한(九韓)이 침범한다. 만일 대궐 남
문헌 기록을 보면 신라 십성(十聖) 중에 안함 쪽 황룡사에 9층 탑을 세우면 이웃 나라가 침
신라를 빛낸 인물관 내부
과 표훈은 특이한 이력을 가진 인물들이다. 먼 범하는 재앙을 진압할 수 있을 것이다.”
저 안함은 안함로(安含老)(579~640년)로 불리기도
하는데, 진평왕(26대, 재위 579~632년) 때 활동했
던 인물이다. 성은 김씨이고, 이찬을 지낸 시부
(時賦)의 손자로 안홍(安弘)법사, 안함(安含)법사,
안함태(安含殆)화상으로도 불렸다. 고려시대 저
작인 『해동고승전』에 보면 그의 생애와 함께
주목할 내용이 나온다.
안함로는 22세(진평왕 22년, 600년)에 승려 혜
숙과 함께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되돌아왔다. 그 이듬해(601년) 에 칙명을
받고 법사가 되어 수나라에서 온 사신과 함께
수나라로 건너가 수 문제(文帝)를 직접 만났다
고 한다. 그곳 대흥사에 머물며 불교 경전과 진
문(眞文)을 공부하고 열반에 이르는 십승(十乘)의
비법도 익혔다. 4년 만(605년)에 공부를 마치고
서역 승려들과 함께 귀국하여 경주 황룡사에 안함로 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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