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3 - 대한사랑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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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6

                       요함과 단정함이었다. 여행의 시작은 경주 오릉과 그 곁의 숭덕전이었다. 신라의 왕들

                       이 잠든 이곳은 소박하지만, 고결한 기운이 감돌았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걷는 동
                       안, 천 년 전의 왕들과 그들의 시대를 잠시 상상해 본다. 역사는 말이 없지만, 공간은

                       그 자체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곧이어 향한 곳은 대릉원과 천마총. 둥글고 완만한 봉분들 사이를 걷다 보니 수 많
                       은 곡선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무서운 무덤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가 되어있었다. 그 조

                       화로움 속에 숨겨진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천마총 내부 전시관을 둘러보며, 화려한 금
                       관과 각종 유물을 직접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경외감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웠다. 과

                       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걸음을 옮겨 첨성대와 그 일대를 거닐었다. 단순한 돌탑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천문대로서의 그 의미는 실로 크다. 선견지명이 있으셨던 ’하늘을 알면 세상이 보일

                       것이다’고 했던 선덕여왕님의 말씀처럼 작은 돌 하나하나가 천체와 우주의 이치를 관
                       찰하려 했던 신라인들의 지혜를 말해주는 듯했다.

                        그 주변의 경주역사유적지구는 마치 박물관 안을 걷는 듯했다. 고대와 자연, 인간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풍경이었다.
                        월정교와 석빙교, 경주 월성을 지나며 흐르는 남천의 물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복원

                       된 월정교의 화려한 자태는 낮에도 아름답지만, 아마 밤에는 더욱 빛이 날 것이다. 고

                       운 단청 아래를 걷는 짧은 순간에도 옛사람들의 삶이 스쳐 지나갔다.
                        국립경주박물관은 말 그대로 신라의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보고(寶庫)였다. 특히 에밀

                       레종, 신라 성덕대왕신종을 마주한 순간의 전율은 아직도 생생하다. 전해 내려오는 전

                       설을 떠올리며 아이를 그 안에 넣을 정도로(물론 전설인지 실화인지 모르겠지만^^)  종 하나를
                       만드는 데 있어서도 심혈을 기울여서 허투루 하지 않으셨던 우리 선조들의 정성, 정신

                       이 느껴졌다.
                        이후 일정은 시내를 벗어나 다소 한적한 곳으로 향했다. 용담정은 수운 최제우 선생

                       이 동학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작은 정자였다. 조용한 연못가에 자리한 정자는 도심의

                       번잡함을 잊게 할 만큼 고요했다. 뒤이어 방문한 동학의 발상지와 수운 최제우 선생 생
                       가에서는,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한 사상과 시대의 전환점을 상징하는 공간을 마주한

                       듯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이렇게 물이 흐르고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공간이
                       기에 득도에 이르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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