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0 - 대한사랑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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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시기 활동한 시인 왕지환(王之渙, 688-742) 다. 해 저문 너머와 황하가 바다로 빠져나가는
의 대표적인 작품 『등관작루』이다. 그는 수없 곳은 가물가물하고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시
이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역사에서 회자된 가 인은 더 멀리 바라보고자 한 층을 더 올라갔다.
장 유명한 시는 단연 『등관작루』를 꼽는다. 왕 이 “欲窮千里目(욕궁천리목) 更上一層樓(갱상일층
지환은 산서성 출신이다. 그가 오른 3층 높이 루)”는 왕지환 이래 1,300년 동안 높은 뜻과 목
의 관작루는 지금의 위치가 아닌 황하 변 포주 표를 추구하는 의미로 널리 사용된 시어이다.
성(蒲州城) 서쪽의 하심주(河心洲)라는 곳에 있었
다. 관작루는 북주 때의 실권자 우문호(宇文護) 본래의 관작루는 금원 교체기(1222년) 전란에
가 북제와 대치하며 황하 변에 지은 성 위의 누 불타 사라졌다. 명초까지는 관작루 옛터가 남
각이었다. 당시의 관작루는 황하를 건너는 자 아 있었으나, 황하의 물길이 바뀌는 탓에 자취
를 감시하는 군사용 망루에 지나지 않았다. 하 를 찾기 어려워졌다고 한다. 그러나 관작루의
지만 강변에 우뚝 솟아 있어 일대의 빼어난 경 명성이 워낙 대단했기에, 임시로 포주성의 서
관을 두루 감상할 수 있었기에 수많은 명사들 성루를 관작루라 불러 현판을 걸었다고 한다.
이 여기에 올라 저마다 시를 남겼고, 왕지환이 그마저도 20세기 항일전쟁 시기 일본군 폭격
『등관작루』라는 역작을 남긴 뒤로 관작루는 더 으로 사라졌고, 2002년 황하에서 1km쯤 떨어
욱 유명세를 탔다. 진 곳에 새로 지은 누각이 지금의 관작루이다.
왕지환은 한 층 더 올라 멀리 바라보려고 하 명루(名樓)는 명시(名詩)를 낳고, 명시는 명루를
는 인간적인 욕구를 20자 오언절구로 절묘하 빛낸다. 옛 자리에 있던 건물은 아니지만 지금
게 노래했다. 해 질 무렵 시인은 관작루에 올라 도 사람들은 ‘更上一層樓’를 체험하기 위해 관
서쪽에 있는 황하의 풍경을 바라본다. 하얀 태 작루에 오르고 또 오른다. 버스 안에서 김학범
양[白日]이 뉘엿뉘엿 저물고 있고, 석양이 붉은 교수님이 유창한 중국어로 『등관작루』를 읽어
비단을 수놓는 장엄한 광경이 펼쳐진다. 해가 주셨다. ‘바이리이산지~, 황허류하이리우~’. 압
서산으로 넘어가려고 한다. 한 층 더 오르면 빨 운법이라는 한시의 라임과 글자 특유의 성조에
간 해의 끝자락을 더 볼 수 있다. 한 층을 더 올 감정을 실어 읊으니, 정말 중국 옛 문인의 시
라 저물지 않은 해를 붙잡아 보지만, 이내 태양 한 수를 청해 들은 것 같았다. 박수갈채가 절
은 석양 속에 사라지게 된다. 체념한 시인은 시 로 터져 나왔다.
선을 황하로 돌린다. 산서성에서는 황하 물이 도착하여 우리 일행은 한껏 들떠 관작루로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 들어갔다. 우람한 몸체가 시선을 압도한다. 한
만 흐르고 흘러 닿는 곳이 바다임에는 틀림없 층 한층 올라 더 높은 곳의 경치를 단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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