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5 - 대한사랑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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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어지는 것이 보편적이다. 사직단에는 보통                      이러한 전형적인 제례 형식과 달리, 만영 후토

            단이 하나 또는 두 개가 설치되어 나라의 토지                    사와 직왕묘의 신은 여느 민간 사묘와 마찬가
            신(國社)와 곡식신(國稷)을 함께 제사 지낸다. 그                 지로 실내에 봉안되어 있고 성별이 구분된 구

            러나 이곳 만영현에서는 사직 제사의 대상이                      체적인 형상을 갖추고 있다.

            되는 두 신격이 분리되어 숭배되고 있었다. 후                     만영 후토사는 영하진(荣河镇) 묘전촌(庙前村)
            토사와 직왕묘라는 별도의 사묘로 숭배되고                       황하 변에 위치한다. 중국 전역에서 가장 오래

            있을 뿐만 아니라, 단이 아닌 묘[사당]에 봉안된                  된 후토 사당이다. 기록에 따르면, 황제 헌원
            것도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다.                             이 처음으로 지기(地祗)를 제사 지내기 위해 이

              제사처에 지붕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사직신                    곳의 옛 지명인 분음아(汾陰雅)에 단을 쌓았다고

            을 자연신으로 보는가 아니면 인격신[人鬼]으로                    하며, 그 뒤로 요순과 여덟 관리가 맡아 제사를
            보는가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역대                     올렸다고 한다. 후토 제사는 한대에 이르러 국

            왕조가 인신(人神)을 제향하는 종묘와는 달리                     가례로 확립되었다. 3년에 한 번씩 황제가 이
            사직 제사를 사당에서 하지 않고 지붕이 없는                     곳에 와서 대사(大祀)를 올렸다고 하며, 한무제

            제단에서 지내는 이유는 토지신과 곡식신을 자                     는 후토사를 지은 후, 8차례나 순행한 기록이

            연신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즉, 제단을 공중에                    있다. 이처럼 한대 이후로 송대까지 24차례 만
            노출시켜 서리와 이슬, 비와 바람을 직접 맞도                    영과 분음(汾陰)에서 후토 제사가 거행되었는데,

            록 하여 천지의 기운이 서로 통하게 한 것이다.                   명청대 북경 사직단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만영



























                                                                       (좌)용봉백 사이로 보이는 헌전과 좌우 배
                                                                       전(오호전, 오악전)
                                                                       (우)후토사 헌전에서 본 정전과 복도각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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