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6 - 대한사랑 10월호
P. 96

후토사는 국가의 공식적인 후토 제사처의 지위                     용봉백, 헌전(献殿), 향정(香亭), 정전(正殿)을 거쳐,

            에 있었다.                                       끝에 있는 추풍루(秋風樓)와 제단(祭壇)을 관통한
              후토사 입구는 제법 계단을 올라야 하는 언                    다. 이런 중축선을 기준으로 희대가 좌우로 불

            덕 위의 정상부에 있었다. 사묘를 높은 곳에 건                   가대(佛家臺)와 도가대(道家臺)로 나누어져 있고,

            립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후토사의 본래 위치                    종루(鍾樓)와 고루(鼓樓), 오악전(五嶽殿)과 오호전
            는 황하 주변의 ‘분음아’라는 언덕이었다. 그런                   (五虎殿)의 배전(配殿) 등이 좌우에서 축선을 강조

            데 명청 시기에 황하의 범람으로 인해 여러 차                    하며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방법은 보
            례 옮겨 짓게 되었고, 청 강희제와 동치제 때                    통 궁궐과 종교건축에서 질서정연함, 권위, 숭

            홍수로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되고 추풍루마저                      고미, 성스러움을 보여주기 위해 흔히 사용되

            황하에 잠기게 되면서, 지금의 위치에 중건했                     는 배치 형태이다.
            다고 전한다. 만영현 후토사가 자리를 바꾸어                      제사가 이루어지는 헌전에는 ‘숭의건곤(崇義

            가며 그 이름을 지속할 수 있던 것은 사묘의 오                   乾坤)’이라 적힌 편액이 중앙에 걸려있다. 그리
            랜 역사와 후토 제사의 중요성 때문이었다.                      고 헌전과 정전 사이의 좁은 공간에 설치된 복

              사묘의 입구인 산문(山門)을 들어서자 제법 규                  도각이 눈에 띈다. 복도각은 보행 편의를 위한

            모가 큰 희대(戱臺)가 있고, 맞은편에 헌전(献殿),                장치겠지만, 두 건물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
            정전(正殿)이 보인다. 뜰의 중앙에는 중앙의 축                   음을 보여준다. 필자가 산서성에서 둘러본 사

            선을 따라 걸으니 ‘용봉백(龍鳳柏)’이란 이름이                   묘의 헌전은 대게 정전과 밀착해 있고 좌우가

            붙은 두 그루의 측백이 대칭적으로 식재되어                      막혀 있는 공통점이 있었다. 오전에 방문한 동
            있다. 산문에서 시작되는 직선적 축선은 희대,                    악묘도 그러했고, 요묘와 순제묘도 마찬가지






            정전에 봉안된 후토 성모상                               후토신이 들고 있는 괘패(卦牌)





















            96
   91   92   93   94   95   96   97   98   99   100   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