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대한사랑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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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둘러보니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산서성에 동일시되곤 했다. 또한 명대 소설 『봉신연의(封
무슨 이유로 태산의 신을 모시는 동악묘가 건 神演義)』에서 황비호가 ‘동악태산천제인성대제’
립되었으며, 별다른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명 곧 태산의 신으로 봉해져 천지·인간의 길흉화
부(冥府)의 신이 동악신과 함께 모셔진 연유가 복을 총괄했다는 픽션이 덧붙어서, 태산부군
궁금했다. 지옥은 또 뭔가? 안내판의 설명에는 의 이름이 황비호이고, 염라대왕이라는 인식이
“동악묘는 동악대제 황비호(黃飛虎)를 모신 사당 생겨났다. 통속적인 문학작품에서 비롯된 황비
이다”라고 적혀있어 궁금증을 더했다. 그저 지 호의 이미지와 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고대
역인의 현실적 요구가 반영된 신앙이려니 했으 로부터 전승된 동악신을 사후세계를 통솔하는
나, 여러 자료를 살펴보고서야 그 사정을 알 수 신의 자리에 위치시킨 것이다. 동악묘의 구성
있었다. 요소에 염왕전, 지옥과 같은 건물이 생겨난 것
만물을 생성하는 기가 동방에서 시작된다는 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물론 이는 도교의 본래
믿음으로 동악 태산은 오악신 중에서도 신분 사고방식과 무관하다. 동악묘 대부분의 건물
이 가장 높았다. 때문에 도교에서 동악대제[태 이 원대의 유적인데 반해, 염왕전이 청대에 만
산부군]는 오악을 통솔하는 수장의 지위를 가질 들어진 것을 볼 때, 염왕전은 동악신에 대한 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상벌이나 생명을 담당하 세의 신앙 형태가 반영된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거나 현세와 내세를 모두 관리하는 높은 위격
의 신으로 숭배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동 만영 후토사(后土祠)와 추풍루
악대제는 생사를 주관하여, 혼백의 심판과 윤 운성시 만영현에는 동악묘를 비롯하여 후토
회 환생을 주관하는 역할까지 담당하기 시작 사, 직왕묘(稷王廟) 등 유서 깊은 사묘가 있다.
했다. 인간의 ‘생사부’를 관장하여 중생의 수명 후토신은 토지신이자 국토의 신이며, 직왕묘에
과 선악을 판단하는 신으로 변모된 것이다. 서 제사 지내는 후직신은 백성의 농사에 관련
이즈음 당 현종은 동악신을 ‘천제왕(天齊王)’ 된 곡식의 신을 말한다. 고대로부터 근세까지
으로 봉했고, 북송의 진종은 11세기 초에 ‘동 동아시아의 왕조 국가가 지낸 사직 제사는 천
악천제인성제(東岳天齊仁聖大帝)’로 가봉했는데, 지인의 국가 제사 체계에서 지신(地神; 지기地祇)
이러한 사건은 동악신 신앙이 중국 전역으로 에 대한 대표적 제례로 규정된다. 역대 제왕과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동악대제는 ‘인 제후는 한 해 농사의 풍흉과 국가의 운명을 관
간의 영혼이 죽으면 태산으로 간다’고 하여 명 장하는 사직 제사를 통해 국가의 안녕과 백성
부를 관장하는 도교의 신인 ‘십전염라’나 불교 의 윤택한 삶을 기원했다. 주지하듯, 사직 제례
에서 사후세계를 관장하는 지장보살의 신격과 는 사방이 개방된 단묘(壇廟) 즉, 사직단에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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