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9 - 대한사랑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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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0

                       문, 박팽년은 성균관에서 야은의 문인 옥고(玉沽)에게 교도(敎導)를 받았고, 하위지는 선

                       산에서 생장하여 역시 야은의 절의 정신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런 정신이 조선의 국맥
                       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야은의 정신에서 배우는 교훈

                        야은의 삶과 사상, 가르침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중요한 가치를 전

                       해 준다.



                       교육을 통한 공공선 추구

                        야은은 자신의 이익보다는 모두를 위한 공공선에 기여하는 교육을 중시했다. 고향
                       선산에 돌아왔을 때, 수많은 학인이 몰려와 가르침을 청하였다. 야은은 아무리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즐겁게 배울 수 있도록, 회초리 없이 가르치고 깨우치게 하였다. 충효를

                       최우선으로 하여, 활쏘기, 글씨 쓰기, 산가지 놓는 방법 등까지 두루 통하게 하는 전인
                       교육에 힘썼다.

                        또한 문인들이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을 힘써 권장하였다. 문인들은 역리(易理)에 밝았
                       다. 역은 성리(性理)의 근원이며 선비가 출처진퇴(出處進退: 벼슬에 나가고 물러남)를 정하는데

                       중요한 가치 기준이 되었다. 아들 사순이 세종의 부름을 받고 떠날 때 “너는 내가 고려

                       를 잊지 못하는 그 마음을 본받아서 네 조선의 임금을 섬겨야 한다.”고 한 것이나, 여말
                       의 문인 조신충이 아들 조상치에게 “나는 전조의 녹을 먹었으니 절의를 지켜야 되지만,

                       너는 숨어 살 의리가 없다.”고 하여 출처진퇴 문제에 융통성을 발휘한 것은 그 예가 흔

                       하지 않다. 야은의 독특한 출처관으로 문인들은 스승의 출처에 구애받지 않고 정계에
                       진출하였다. 김숙자, 박서생, 옥고, 조상치 등은 능력있는 관료, 선정을 베푼 목민관으

                       로 활약했으며, 청백리로 칭송을 받았다.



                       지조와 실천을 통한 도덕성 회복

                        야은의 도학은 이론에 그치지 않고 일상 속에서 도덕과 예절을 실천하며 자신과 주
                       위 사람들을 교화하였다. 학문과 실천의 길을 택한 초야의 선비로서, 스승으로서, 그의

                       삶은 한 시대의 사상적 흐름을 바꾸는 뿌리가 되었고, 훗날 조선을 지탱하는 정신적 기

                       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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