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4 - 대한사랑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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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 인물 열전(9)
고려 말에 삼은(三隱)이 있다.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이다. 그중에서 야은은 포은, 목은에 비하면 세상에 덜 알
실 려진 느낌이다. 그런 야은이 영남학파, 사림의 큰 스승임을 알
았을 때 놀라움과 당혹감을 느꼈다. 야은에 대해 우리가 보통
천 아는 수준은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하는 시조
적 한 수가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 선생은 부귀와 영화를 탐하지
도 않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뜻을 굳건히 하여 조선 초기부터 충
학 절의 상징이 되었다. 여말선초의 혼란기, 백이숙제(伯夷叔齊)처
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은거하면서, 제자를 키우는
자 데 뜻을 두어 훗날 사림파의 정신적 개창자로 추앙받았다. 야
야 로 은은 성리학의 학문적 전통을 잇고 그 토대를 다졌을 뿐만 아
은 니라, 이를 생활에서 실천하는 도학의 으뜸으로 한국 성리학
사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불교 예법이 아닌
冶 역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의한 예법을 행하고, 절의를 지켰으며,
隱 사 염치를 알았다. 야은은 선비 기풍 확립에도 크게 이바지한, 아
에 이러니하게도, 조선의 선비이다.
아쉽게도 야은 사상에 대한 문헌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 사
길 남 상을 연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평생에 걸친 삶의
재 은 태도와 가르침을 통해 그의 정신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吉 스 흔들리지 않았던 삶의 궤적
고려 공민왕 2년에 선산군 봉계리에서 태어난 길재 선생은
再 승, 길원진(吉元進)의 아들로 해평(선산) 길씨의 중시조이다. 자는 재
보(再父), 호는 야은 또는 금오산인(金烏山人)이다. 조선 세종 원
년 67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야은은 가난한 형편에도 학문에 뜻을 세워 10세에 도리사
글. 길이숙 기자 (冷山 桃李寺)에서 공부를 시작, 18세에 박분(朴賁)을 스승으로 논
(세계성씨연맹 선산길씨 사무국장)
어, 맹자 등을 읽었고, 이색(牧隱), 정몽주(圃隱), 권근(陽村)의 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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